지난해 1월 SBS ‘야심만만’에 나와 이른바 ‘젖꼭지 사건’으로 시청자들의 배꼽을 빼놓자마자 무려 6만5000여 명이 그의 미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사람들은 ‘왕의 귀환’이라며 복귀를 반겼다.
그러나 3개월여가 지나자 반응은 어느새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식어버린 열기를 증명하듯 대중과 언론은 조금씩 등을 돌렸다.
개그맨 최양락(48)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는데도 말이다.
롤러코스터 인기 ‘어질’
2년 가까운 시간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순식간에 흘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한꺼번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자나깨나 개그만 생각하던 일상을 바꿔놓았다. “‘야심만만’의 방송 직후 딸이 제 미니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더군요. 매일 미니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을 보며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정신이 멍한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치솟은 인기는 빠르게 내려앉았다. 조근조근 친구들과 수다 떨 듯 차근차근 풀어가는 특유의 개그 스타일은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요즘의 트렌드에 어울리지 않았고, 오랜만에 되찾은 자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인터넷 없던 ‘호시절’
그는 “인터넷없이 아날로그로 일하던 시절이 그립다”고 털어놨다. ‘쇼 비디오자키’와 ‘유머 1번지’ 등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시청자의 반응은 첫 방송이 나가고 석 달 정도가 지나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얻은 인기는 보통 일년 이상 지속됐다. 인기의 상승과 하락 속도가 모두 완만했던 것이다.
내년이면 방송 데뷔 30년째, 갑자기 ‘디지털 모드’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기가 떨어지고 괴로워하는 젊은 후배들의 심경을 이해하겠더라고요. 내일 모레면 오십인 저도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오죽했겠어요. 한 번쯤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게 좋을 듯싶었습니다.”
30년 개그인생 담아
최근 출간한 책 ‘두말할 필요없이 인생은 유머러스’는 최양락이 자신의 개그 인생을 담담하게 되돌아보는 에세이다. 성공과 실패를 차분한 어조로 되짚고 웃음의 철학을 소개한다. 또 유머가 부족한 이들을 위해 웃기는 노하우도 공개했다.
원래 지난해 봄 출간 예정이었지만,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인기가 마구(?) 추락하면서 시기도 늦춰졌고 내용도 상당 부분 바뀌었다.
당초 구상대로 집필했으면 자기 자랑이 책 내용의 90% 이상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차례 인기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성찰과 반성이 주를 이루게 됐다. “개그맨으로 일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쭉 개그의 길을 걸어야 할 처지에서 한 번쯤은 중간 평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책을 읽은 누구는 ‘너답지 않게 책이 너무 점잖다’고 평하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쓸 수 있어 무척 뿌듯했습니다.”
예능보다 라디오 취향
요즘은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아내 팽현숙과 함께 고정 초대손님으로 출연 중이고,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에 전념하고 있다. 프로그램 수는 줄어들었지만 시끌벅적한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자신의 스타일에 잘 맞아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물론 아쉬운 구석도 있다. MBC ‘꿀단지’의 ‘2010 알까기 제왕전’이 지난달 프로그램 종영과 함께 막을 내렸을 땐 방송사가 야속했다. “코미디는 오랫동안 방송사의 효자였어요. 저비용 고효율로 그만한 프로그램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제는 코미디를 정책적으로 보살펴 줄 때입니다. 대승적으로 배려해줘야 해요. SBS ‘웃찾사’까지 폐지되면서 후배들은 갈 데가 없어졌어요. 드라마 제작비의 절반, 아니 그 이하만 투자해도 질 좋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데 너무 무심해요.”
코미디의 앞날을 걱정하는 그의 목소리가 사뭇 비장했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외길만 가겠다고 다짐했다. 웃음을 안겨주는 것은 천직이므로.
/사진=최현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