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일원동에는 산의 모양이 늙은 할머니의 모습과 같다고 해 과거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던 곳이 있었다. 산명은 조선시대 초 태종의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개칭됐다. 여승이 앉은 모습처럼 생겨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미세먼지 물럿거라"··· 피톤치드 내뿜는 대모산 소나무숲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76㎍/㎥ 이상)을 기록하면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지난 10일 오후 '대모산 도시자연공원'을 찾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담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4419번 시내버스를 타고 8개 정류장을 이동한 뒤 일원동한솔아파트에서 하차해 수서역쪽으로 314m(6분)을 걸었다.
해발 293m의 나지막한 산으로 알고 왔는데 고개를 잔뜩 쳐들어야 정상이 겨우 보였다. 공원 입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네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차림의 실내복이 아닌 등산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사람들의 양손에 등산 스틱까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가는 길이 평탄치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등산로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었다. 헬스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갖가지 운동기구가 가득한 체력단련장이 나왔다. 이곳엔 '등허리 지압기', '등허리 근육 풀기', '오금 펴기' 등의 이름이 붙은 온몸운동기구와 하체운동기구가 설치돼 있었다. 기구의 힘을 빌려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는 '거꾸리'와 역기가 설치된 운동장 바로 옆에서는 1994년 6월 대모산우회 회원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체육관도 볼 수 있었다.
일원동에 사는 김모 씨는 "실내 헬스장은 코로나 옮을까 봐 가기가 좀 그런데 여기는 야외라서 감염 걱정이 없다"면서 "코로나가 사라져도 무료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것 같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숲속 체력단련장을 지나 대모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이 촘촘하게 이어져 등산용 신발이 아닌 일반 운동화를 신고도 미끄러지지 않고 산을 잘 오를 수 있었지만, 경사가 워낙 가팔라 숨이 턱턱 막혔다. '물 한 모금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눈앞에 '실로암 약수터'가 나타났다. 앞에서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며 길잡이 역할을 하던 어르신은 노란색 바가지에 약수를 떠 벌컥벌컥 들이켰다. 침을 꼴깍 삼키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사발 떠 마셨는데 물이 시원하고 달았다. 앉은 자리에서 3번 연속 약수를 원샷하고 다시 산을 올랐다.
이날 대모산 도시자연공원에서 만난 강남구 주민 박모 씨는 "옛날에 여기에 사유지가 일부 포함돼 있어서 땅 주인이 사람들 못 오게 철조망을 치고 난리를 쳤다"면서 "다행히 구청에서 보상을 해가지고 우리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늘처럼 미세먼지 심한 날에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 대모산 공원에 나왔다"며 "근데 KF94 마스크를 썼더니 숨이 차 졸도할 것 같아 사람 없을 때는 좀 벗고 다녀야겠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 초반 증권가 큰 손으로 '광화문 곰'이라고 불렸던 고모 씨가 있었다. 1966년 대모산 일대 약 28만평의 땅을 사들인 고 씨는 구청이 자신의 사유지에 체육시설을 설치하자 이를 철거하라고 1996년 소송을 제기했다. 승소와 패소를 거듭하다 결국 강남구청이 고씨의 땅을 매입하면서 갈등이 마무리됐다.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 가능한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 내 '무장애길'
대모산 도시자연공원 한켠에는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이 약 1만2000㎡ 규모로 만들어졌다. 강남구는 경작으로 훼손된 대모산을 토지보상하고 기존 지형의 다랑이(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논배미) 특성을 살려 돌담 사이로 야생화를 심어 화원을 조성했다.
이곳에는 ▲모감주나무, 전나무 포함 교목 21종 420여주 ▲풍년화 및 히어리 등 관목 26종 1만8000여주 ▲구절초·노루귀 같은 초화류 92종 18만8000여본이 식재됐다. 은빛을 띤 흰색 나무껍질을 가진 '은백양'이 화원 한가운데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네 주민들은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무장애길'을 꼽았다. 무장애길은 노약자, 임신부, 장애인 등 보행약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의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이다. 지난 10일 오후 대모산 숲속 야생화원을 찾은 이모 씨는 "다리가 아파 대모산은 오를 수 없는데 여기는 늙은이들도 걷기 편하게 길을 내놨다"며 "더 많은 공원에 이런 시설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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