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지만, 그 흔적은 낡은 건물의 갈라진 벽, 빛바랜 간판, 거칠어진 나무 기둥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한 시대의 이야기를 품었던 공간도 기능을 잃는 순간 빠르게 쇠락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곤 한다. 그러나 경기도 곳곳에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재생의 기적'을 이룬 장소들이 있다. 버려진 교실이 문화공간으로, 방치된 하수처리장이 시민의 정원으로, 낡은 창고가 마을의 쉼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오래된 것들이 주는 따뜻한 위로와 미래로 향하는 희망을 동시에 발견한다.
이처럼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조성해 여행지로 재탄생시킨 가운데, 경기관광공사가 이번에 추천한 여행지는 ▲방치된 하수처리장이 시민의 정원으로 '성남 물빛정원' ▲폐교에서 피어나는 문화의 향기 '평택 웃다리문화촌' ▲물의 기억을 품은 복합문화공간 '시흥 맑은물상상누리' ▲채석장을 활용한 자연 친화 공원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 '양주 봉암창고카페' ▲창고를 리모델링한 문화 쉼터 '고양 일산문화예술창작소' 등이다.
◇ 버려진 시설에서 시민의 정원으로-성남 '물빛정원'
성남에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성남 물빛정원'이다. 한때 하수처리장이었던 이곳은 운영이 중단된 뒤 30년 가까이 흉물처럼 방치돼 왔다. 그러나 올해, 휴식과 예술이 어우러진 시민의 정원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며 화제를 모았다.
탄천과 동막천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물빛정원은 '두물길'이라는 별칭을 갖는다. 내부에는 담빛쉼터, 꽃대궐정원, 소풍마당 등이 조성됐다. 둥근 조형물이 놓인 담빛쉼터,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는 꽃대궐정원, 파라솔과 벤치가 설치된 소풍마당은 연인과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다. 특히 옛 하수처리장 건물과 현대적 정원 풍경이 어우러지며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체감할 수 있다. 오는 9월부터는 뮤직홀과 카페가 문을 열어 문화 휴식공간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갖출 예정이다.
◇ 폐교에서 문화촌으로-평택 '웃다리문화촌'
평택 서탄면 금각리 들녘에 들어서면,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금각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1945년 개교해 2000년 폐교된 이 학교는 6년여 방치 끝에 '웃다리문화촌'이라는 이름으로 새 숨결을 얻었다.
옛 교실은 전시장으로, 별관은 세미나실과 쉼터로 변모해 시민들을 맞이한다. 상설전시관에는 금각초등학교의 옛 풍경과 마을 자료가 전시돼 있고, 기획전시실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무대가 된다. 학생들의 운동장이었던 공간은 이제 잔디와 메타세쿼이아가 어우러진 문화마당으로 거듭났다. 웃다리문화촌은 낡은 흔적 위에 예술과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어, 지역 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호흡하는 열린 문화터전이 되고 있다.
◇하수처리장에서 상상력의 무대로-시흥 '맑은물상상누리'
거대한 산업시설이 문화와 예술의 무대로 탈바꿈한 곳도 있다. 시흥의 '맑은물상상누리'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생활하수를 처리하던 공간이 이제는 아이들과 시민들의 창의와 상상이 살아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창의센터 전시장은 하수처리 과정을 재미있게 풀어내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그러나 진짜 매력은 재생 공간들에 있다. 소화조와 관제탑을 연결한 '비전타워'는 내부가 스릴러 영화 세트를 방불케 하며, 전망대에서는 둥근 지붕들이 꽃처럼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과거 가스 저장소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변해 시흥 명소들을 소개한다. 수생정원과 분수대 또한 이색적인 볼거리다. 맑은물상상누리는 버려진 공간이 창의적 상상력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채석장의 흔적을 품은 시민공원-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안양 수리산 북쪽 자락에 자리한 병목안시민공원은 사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시민들의 휴식처다. 그러나 이곳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다.
오늘날 공원에 들어서면 황토 맨발 산책로, 넓은 잔디마당, 시원한 인공폭포가 방문객을 맞는다. 인공폭포는 과거 채석장의 흔적이자 상징으로, 한때의 산업시설이 시민을 위한 풍경으로 바뀐 사례다. 공원 한쪽에는 옛 석재 운반용 객차가 전시돼 있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계곡과 숲에 둘러싸인 캠핑장 역시 인기다. 병목안시민공원은 과거 채석장에서 오늘날 산책·휴식·캠핑을 즐길 수 있는 '팔방미인 공원'으로 거듭났다.
◇ 공동체가 살린 마을 창고-양주 '봉암창고카페'
양주 봉암리 끝자락에는 낡은 농협 창고를 개조한 '봉암창고카페'가 자리한다. 과거 비료를 보관하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주민과 여행자를 잇는 마을 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높은 천장과 긴 테이블이 어우러진 내부는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벽면에는 봉암마을의 옛 사진들이 걸려 있다. 봄과 가을이면 폴딩도어 너머 뒷마당 벤치에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카페 한쪽에는 마을의 오래된 간판들이 놓여 있어 정취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주민 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는 공동체 기반의 카페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버려진 창고가 공동체의 힘으로 되살아난 봉암창고는 지역에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 창고에서 열린 문화공간으로-고양 '일산문화예술창작소'
일산역 인근 농협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일산문화예술창작소'는 도시 속 쉼표 같은 공간이다. 외벽에 남은 농협 마크가 과거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내부는 전시와 휴식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변모했다.
전시 공간에서는 주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며, 한쪽 벽면에는 '일산 옛 사진전'이 상설로 걸려 있어 과거의 거리를 추억하게 한다. 전시가 없는 날에는 주민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무더위 쉼터로 개방된다. 오래된 건물이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열린 문화 플랫폼으로 거듭난 것이다.
경기도의 버려진 학교, 하수처리장, 창고, 채석장은 이제 시민과 예술, 자연이 만나는 공간으로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이들 재생 공간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 보존을 넘어, 기억과 현재를 잇는 다리로서 지역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오래된 것의 재발견은 곧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의 시작임을, 이곳들이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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