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 전산화 '실손24' 2단계가 지난 25일 문을 열었다. 병원 창구 방문·서류 발급 없이도 청구가 가능하니 '원터치 편의'만 보면 혁신이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버튼은 생겼지만, 회로는 아직 헐겁다.
10월 21일 기준 실손24 연계 요양기관은 1만920곳으로 전체의 10.4%에 그친다. 단계별로 보면 1단계 대상인 병원·보건소는 54.8%로 절반을 넘겼지만 2단계의 핵심인 의원·약국은 6.9%(6630곳)다. '확대 시행'과 '낮은 참여'가 동시에 존재한다.
제도의 취지와 한계는 법 문구에 담겨 있다. 법은 '의료기관이 환자 요청 시 청구 서류를 전자적으로 전송할 수 있게 한다'고 정한다. 강제 처벌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표준을 깔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모델이다. 전송대행기관은 보험개발원이 맡는다. 표준과 운영 주체는 정해졌지만 현장 적용의 마찰면을 줄이는 설계는 아직 진행형이다.
의료계의 반론은 '편의'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나온다. 개인정보 보호, EMR(전자의무기록) 연동·유지보수 비용, 업무 부담 등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다. 참여율이 낮은 이유가 '비협조'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책의 선의와 현장의 현실 사이에 남은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전산화는 신뢰를 갉아먹는 규범이 될 수 있다.
해법은 기술이 아니라 운영의 규칙을 정비하는 일이다. 요양기관·EMR업체·보험사가 비용 분담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합의할 필요가 있다. 표준 API와 인증·접근권 관리(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하는지)는 규칙으로 공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용 편의는 네이버·토스 등 플랫폼 연계로 높일 수 있지만, 인센티브는 정보보호와 분쟁 예방 원칙을 전제로 신중한 설계가 요구된다. '빨리'보다 '명확히'가 먼저다.
실손 전산화는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의 힘겨루기가 아니다. 소비자 편익, 진료 현장의 안전, 데이터 주권, 비용의 공정 분담이 동시에 맞물려야 굴러간다.
당국은 11월부터 네이버·토스 등 대형 플랫폼에서 실손24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다만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다. 버튼은 이미 눌렸다. 이제는 회로의 신뢰를 설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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