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서자 온라인 커뮤니티엔 "집은 포기했고 월급 떼서 미국 우량주 사는 게 유일한 재테크인데, 이제는 환율 올랐다고 서학개미 탓이라니요?"라는 글이 돌았다. 투자자들은 분노했고, 정부는 연일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해외투자 쏠림'을 지적했다.
숫자만 보면 틀린 지적은 아니다. 올해 1~3분기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는 245억달러로 92% 늘었고, 개인투자자도 74% 증가했다. 전체 해외 주식 투자에서 국민연금 비중은 34%, 개인은 23%. 10~11월 개인 순매수는 123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쏠림'이라는 표현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젊은 분들이 해외투자를 '쿨하잖아요'라며 한다"고 말한 뒤 커뮤니티엔 "누가 멋 부리려고 미국 주식 사냐"는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여기에 '가짜 담화문'까지 퍼졌다. 대통령이 해외주식 양도세를 40%로 올리고 보유세를 신설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실과 기재부는 "명백한 허위"라며 진화했지만, 투자자들은 "실제 의중을 흘린 것 아니냐"며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이 이런 '행동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러인덱스는 100 아래로 떨어졌는데 원화는 1400원대 중반에 고착돼 있고, 코스피는 9월 이후 40% 넘게 올랐는데도 원화 약세는 이어진다. 엔화 급락, 한·미 금리차, 기업들의 달러 보유 확대, 대미 투자 협상 우려 등 구조적 요인이 훨씬 크다. 해외투자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전문가들도 "달러 수급 요인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은 이미 외환보유액을 웃도는 해외자산을 쌓았고, 개인은 저성장·박스권 증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외로 향했다. 오랜 불신의 '결과'를 두고 이제 와서 환율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해법은 다시 해외투자자로 향한다. 기재부·한은·복지부·국민연금은 4자 협의체를 가동해 연금의 해외투자 프레임워크를 손보려 하고, 환헤지 전략도 더 유연하게 쓰자는 논의가 나온다. 손대기 쉬운 부분부터 조정하겠다는 접근이다.
하지만 서학개미에게 해외투자는 '쿨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속에서 원화 자산만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집값, 임금, 연금 전망을 고려하면 해외 ETF·미국 주식은 몇 안 되는 선택지다.
고환율의 책임을 해외투자자에게 돌리는 건 가장 쉬운 설명이다. 하지만 그 설명이 반복될수록 한국 자본시장의 체력과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환율을 낮추고 싶다면, 해외투자를 탓하기보다 그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시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