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1%대 시대, 기업 전략이 좌우
반도체·AI는 질주, 전통 제조업은 정체
유통·소비, 양적 성장에서 질적 경쟁으로
2026년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 국면의 끝자락에서 벗어나며 완만한 회복 흐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률은 1%대 후반 수준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번 회복은 과거처럼 산업 전반이 함께 성장하는 국면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저성장이 구조화된 환경 속에서 산업 간, 나아가 같은 산업 내 기업 간 성과 격차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여전히 불안정한 글로벌 경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 정책 변화와 미·중 갈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완화와 재확산을 반복하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수출 중심의 고성장 국면은 이미 지나갔고, 내수 회복 역시 산업별·기업별 편차가 크다는 점에서 2026년은 '얼마나 성장하느냐'보다 '누가 성과를 내느냐'가 더 중요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변화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AI를 축으로 한 IT 신산업이 있다. 글로벌 AI 투자 확대와 데이터센터 증설은 고부가 메모리와 첨단 공정 수요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으며, 반도체 산업은 주요 산업 가운데 수출·내수·생산이 모두 증가하는 몇 안 되는 분야로 꼽힌다. 바이오헬스 산업 역시 바이오시밀러와 위탁생산개발(CDMO)을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 흐름이 예상된다. 다만 이들 산업 안에서도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실적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IT 신산업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기업 간 격차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정보통신기기와 디스플레이, 가전 등 ICT 관련 산업은 IT 경기 회복과 교체 수요에 힘입어 점진적인 개선이 예상되지만,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와 해외 생산 확대는 국내 기업 간 성과 차이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선업은 수주잔량을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겠지만, 기저효과로 인해 단기 지표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통 제조업의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철강과 정유, 석유화학 산업은 미국의 고율 관세와 중국발 공급 과잉, 자급률 상승 등으로 구조적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탄소 규제 강화와 비용 부담까지 겹치며 생산 여건은 한층 악화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전환 속도와 경쟁력에 따라 성과는 크게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산업 역시 구조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의 자동차 품목 관세 확정으로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지만, 고관세 부담과 전기차 수요 둔화, 주요 차종 노후화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이차전지 산업은 구조적 성장 산업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026년에는 해외 현지 생산 확대의 영향으로 내수와 수출, 생산 지표가 엇갈리는 흐름이 예상된다. 기업별 대응 속도에 따라 성과 차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산업 전반의 흐름 속에서 유통·식품업계 역시 '선별적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유통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밝은 곳은 백화점이다. 서울 강남권과 수도권 핵심 상권의 상위 점포들은 명품 소비와 체험형 콘텐츠 강화,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바탕으로 '경험형 공간'으로 재정의되며 오프라인 유통의 중심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다만 이는 일부 점포에 국한된 현상으로, 지방이나 경쟁력이 약한 점포들은 여전히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출점 경쟁의 시대가 끝나고 '선별과 정리'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마트는 비식품 경쟁력을 사실상 상실한 대신 식품 중심 채널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선식품과 델리, 가성비 중심의 PB 상품에 집중하며 매장 구조 역시 그로서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점포 수 포화로 출점 중심 성장이 종료되면서 양적 성장 산업에서 질적 관리 산업으로 전환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커머스 업계는 2026년에도 긴장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계 플랫폼의 초저가 공세가 일상화되면서 상위 사업자 중심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하위 플랫폼은 선택과 집중 또는 추가 구조조정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식품업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겠지만, 가성비·저당·기능성·간편식 등 구조적 수요가 있는 카테고리와 그렇지 않은 분야 간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홍성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26년은 거시 지표의 반등 여부보다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으로 평균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보다는 산업과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며"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등 일부 산업은 성장세를 이어가지만, 소재 산업과 전통 제조업은 구조적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어 "저성장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이제 성장률 숫자 자체보다 성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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