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마지막 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가 직접 설계한 세종에 묻혔다. '대통령 빼고는 다 해 본' 이 인물은 생의 마지막까지 해외에서 공무를 수행하려 했다. 그가 늘 강조하던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의 현신(現身)인 셈이다.
정치인 이해찬의 궤적은 '이해찬의 민주당'과 '민주당의 이해찬'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민주화'라는 첫 번째 꿈이 실현되자, 그는 '민주적 국민정당'이라는 꿈을 설계했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회고록에서 그는 당시의 평민당을 이렇게 말한다.
"기본적인 사무역량이 없었다. 서류를 꾸밀 줄 아는 사람도, 변변한 타이프 한 대도 없었다."
이 전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도 '민주당'이라는 정당을 국가를 경영할 역량을 가진 유기체로 만들고자 했다. 1988년 책상 하나 제대로 없던 야당을 2026년 현재 원내 최대 의석을 보유한 여당으로 키워낸 힘은 그의 치밀한 기획과 시스템 정착에서 나왔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정부 탄생 뒤엔 늘 '설계자 이해찬'이 있었다.
'민주당의 이해찬'은 '민주적 국민정당'이라는 꿈을 위해 기꺼이 한 몸을 갈아 넣은 헌신을 말한다. 2016년 이 전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컷오프를 당했다. 당시 그는 배우자 김정옥 여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평생을 바친 단심(丹心)을 부정당한 서러움이었을 테다. 결국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민주당의 모두가 귀환을 예상할 정도로, 그는 '민주당의 이해찬'이었다.
그가 대표를 역임할 때 민주당은 '기율이 잘 잡힌' 정당의 느낌이 났다.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다가도, 중요한 국면에서 그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악역이 필요할 때는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이해찬'이라 가능했다.
기자 개인으로서 '정치인 이해찬'의 두 궤적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그렇기에 시대의 거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시리도록 헛헛하다. 그가 설계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제 그 없이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해찬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민주당은 그가 만든 설계도를 들고, 대답할 이가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가 꿈꾼 '민주적 국민정당'이라는 목표는 아직 진행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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