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한때 이곳은 국내 IT 산업의 성장 신화가 응축된 공간이었다. 높은 연봉과 파격적 보상, 공격적 채용과 대규모 투자. 이른바 '판교 모델'은 확장과 낙관의 상징이었다. 판교에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은 미래 가치를 인정받았고, 개발자는 커리어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판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장세가 주춤해진 이후, 낙관 대신 신중함이 스며드는 과정이 이어져 왔다.
최근 만난 한 게임사 대표는 "판교 개발자들의 분위기도, 판교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질문도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느냐'를 묻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느냐'를 먼저 따지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현장의 변화는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는 긴 호흡을 전제로 수십 명의 개발자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회사 역시 그 과정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겼다. 완성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향성이 맞다고 판단하면 밀어붙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시장 반응을 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빠르게 정리한다. 효율과 속도를 앞세운 전략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일 수 있지만, IT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불안 요소로 다가올 수 있다. 언제든 프로젝트가 접힐 수 있다는 인식은 곧 고용과 커리어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 드라마틱한 성장을 경험했던 게임사들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예민하게 감지된다. 단기간에 몸집을 키웠던 조직일수록 성장 둔화 이후의 긴장감은 더 크게 체감될 수밖에 없다. 공격적 채용과 대규모 프로젝트 확장이 일상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온도 차는 분명하다.
투자 시장의 태도 역시 냉정해졌다. 성장 서사만으로는 자금을 끌어오기 어렵다. 현금 흐름과 수익 구조, 지속 가능성이 먼저 거론된다. 판교라는 지리적 상징이 투자 판단의 우선 조건이 되던 시기는 옅어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식이다. 판교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업들이 얼마나 명확히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속도전만으로는 산업의 신뢰를 지키기 어렵다. 개발자의 안정감과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단기 효율과는 다른 문제다.
판교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IT 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되, 인재와 산업 기반을 함께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성장의 판교가 생존의 판교로 이동하는 이 시기, 기업의 선택은 곧 산업의 방향이 된다.
'판교의 신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시험대에 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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