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꾼다는 장밋빛 전망 뒤에 가려진 서늘한 지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를 넘어, 이제는 '누구의 자리가 사라지는가'에 대한 잔인한 답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는 그 결과가 명확하다.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 개 넘게 증발하는 동안, 50대 고용은 오히려 20만 개 이상 늘었다. 신기하게도 이 격차는 AI 노출도가 높은 금융, 프로그래밍, 전문 서비스 업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술이 발전하면 모두가 공평하게 위협받는 게 아니라, 경험 없는 신입부터 정글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소리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연공편향적 기술 변화'라는 고상한 용어를 쓴다. AI가 도입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숙련된 선배들의 노하우와 AI를 결합해 효율을 뽑아내고, 그 과정에서 잡무를 배우며 성장해야 할 신입의 자리는 아예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전문직의 상징인 공인회계사(CPA)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어렵게 시험에 합격한 1200명 중 고작 300여 명만이 실습지를 찾았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과거 신입 회계사들이 도맡던 데이터 검토와 기초 서류 작업을 AI가 가로채면서, 업계는 더 이상 '키워 써야 할' 신입을 반기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전화교환원이 사라진 사례를 들며 이를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전화교환원이라는 특정 직무가 사라진 것과, 전 산업군에 걸쳐 '진입로' 자체가 봉쇄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다리 아래쪽 칸이 통째로 잘려 나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도 결국 제 갈 길을 찾을 것"이라며 태평한 소리를 한다. 이는 기득권을 쥔 세대가 던지는 무책임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결국 AI는 기업에는 효율을, 기성세대에게는 업무 경감을 선물했지만, 청년들에게는 노동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조차 뺏어갔다.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속도를 앞지르고, 그 피해가 오로지 사회 초년생에게 집중되는 구조라면 이건 진보가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경력직 같은 신입'을 요구하던 시장이 이제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신입'을 내놓으라며 청년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다. 사다리가 없어진 세상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우리는 그 잔인한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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