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사람하고 똑같다고 생각해요.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 완전히 같은 사람이 없는 것 처럼, 빵도 매일 달라집니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 손의 압력에 따라 결과가 모두 달라져요."
빵은 사람과 닮았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특히,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는 온도와 습도, 손끝의 압력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예민한 빵이다. 매일 가장 완벽한 한 겹을 만들기 위해 진심을 쏟는 김명수(53·사진) 제빵사.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김 제빵사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는 긴 발효 시간이 핵심이다. 일반 빵이 1~2시간 안팎 발효를 거친다면, 이곳의 페이스트리류는 발효에만 3~4시간씩 공을 들여야 한다. 새벽 출근이 일상이 된 이유다.
김 제빵사는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는 완성까지 꼬박 3일이 걸린다"며 "일반 빵은 당일 반죽과 발효를 거쳐 바로 생산할 수 있지만, 이 빵들은 결 작업과 온도·습도 관리가 까다로워 한 가지라도 맞지 않으면 제대로 부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일 생산·당일 판매 원칙을 지키기 위해 출근 직후 당일 판매 물량을 팬딩해 발효실에 넣고, 이후 굽기와 토핑 작업을 진행한다"며 "오후에는 다음 날 사용할 반죽을 생산·재단해 냉동 보관하는 작업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 가장 까다로운 빵에 도전하다
크루아상. 까다로운 만큼 매력적이었고, 어려운 만큼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김 제빵사는 7년간 서울 종로구의 '솔트24'에서 사촌 형제들과 함께 빵집을 운영한 뒤, 자신만의 색을 담은 크루아상을 만들기 위해 서울 성동구에 '성심크루아상' 매장을 열었다.
크루아상 전문 제빵사로 도전한 계기에 대해 그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빵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며 "예전만 해도 크루아상 빵들은 상당히 고가의 빵들이었기 때문에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매력을 느꼈다. 크루아상은 정말 빵 가운데서도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종류다"라고 말했다.
일반 빵은 반죽과 발효만으로 비교적 빠르게 완성되지만, 크루아상과 페이스트리는 빵 안의 층과 결까지 세밀하게 살려야 한다. 겹겹이 쌓인 결이 특유의 바삭한 식감과 풍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계절마다 만드는 방법도 다르다. 그는 "여름에는 발효종에 얼음을 넣어야 되고, 겨울이면 담요를 덮어줘야 한다. 온도하고 습도가 조금만 안 맞으면 예민해서 부풀지 않는다. 공정 자체가 조금만 잘못되면 모양이 이상하게 나오고 안 부풀고 그래서 처음 배울 때 많이 어려웠다"고 했다.
가게 이름에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겼다.
그는 "어머님이 종로 피맛골에서 성심이라는 순댓국집을 오래 운영하셨다"며 "나중에 가게를 하게 되면 꼭 우리 어머니 이름을 따서 성심이라고 지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성심당이냐고 물어보는데 그것과는 무관하다"고 전했다.
◆ 천연 발효종이 사는 작은 과학실
김 제빵사는 보존제와 유화제 등 식품첨가물 대신 천연 발효종을 고집한다. 빵집 한편에는 10년 넘게 직접 키워온 발효종이 자리하고 있었다. 온도와 습도, 시간에 따라 매일 상태가 달라지는 발효종을 관리하는 안쪽 공간은 작은 과학실에 가까웠다.
그는 "르방(Levain)과 풀리시(Poolish)라는 발효종을 매일 관리하며 먹이를 준다"며 "온도를 맞춰가며 키우다 보면 거미줄 처럼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온다. 빵도 일종의 과학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음식은 재료 하나가 빠져도 나중에 보완할 수 있지만, 빵은 공정 하나만 어긋나도 전부 폐기해야 한다"며 "그만큼 온도와 습도, 시간 관리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공정과 재료에 공을 들이는 만큼, 크루아상만의 차별성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빵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빵이 아니다. 소금도 버터도 모두 프랑스산 고가의 재료를 쓴다"며 "크루아상은 일반 빵보다 훨씬 세심한 작업과 좋은 재료가 필요하다. 단팥빵이나 소보로빵 처럼 단순 발효로 만드는 빵과는 공정 자체가 다르고, 정성을 쏟는 정도가 다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 감동 없는 빵은 만들지 않는다
"사장님, 빵을 먹으면서도 먹는 빵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요."
김 제빵사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손님의 한마디다. 그는 유행을 좇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빵은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들과 똑같은 레시피로 만든 빵으로는 손님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손님도 있다. 서울대병원 근처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시절, 위암 치료를 받던 손님들이 가게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김 제빵사는 "손님들이 '이 빵은 무엇으로 만들었길래 속이 이렇게 편안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며 "그럴 때마다 빵은 더 건강하고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했다.
단골 택배기사와의 일화도 있다. 빵집에 자주 들르던 한 택배기사는 "10년 넘게 택배 일을 하며 성동구 빵집은 거의 다 가봤다"며 "어머니가 빵을 좋아해 자주 사드리는데, 여기 빵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단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감동이 모였다. 이렇게 쌓인 기억들은 현재도 김 제빵사가 자부심을 갖고 빵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천사의 빵'이 되는 그날까지
김 제빵사는 언젠가 자신의 빵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꿈꾼다. 은퇴 후, 좋은 기술과 정성을 담아 만든 소금빵을 성당에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그의 오랜 바람이다.
그는 "60살쯤 은퇴를 하면 성당에 소금빵을 나누는 봉사를 하고 싶다"며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 그 빵이 천사의 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또 "봉사활동 역시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며 "언젠가는 외국인들도 제 빵을 기억해 주고 다시 찾아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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