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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자수첩

[기자수첩] 빚투와 가계부채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길을 바꿨다. 가계부채 관리의 초점이 주택담보대출에 맞춰진 사이 돈은 다른 통로로 흘렀다.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9조3000억원 늘었다.

 

주담대 증가폭은 줄었지만 기타대출은 5조3000억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은행권에서는 마이너스통장 등 한도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같은 시기 증시에서는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집을 사기 위한 빚은 조이고 있지만, 주식을 사기 위한 빚은 다른 이름으로 불어나고 있는 셈이다.

 

투자는 개인의 선택이다. 상승장을 보고 기회를 잡으려는 마음까지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빚을 낸 투자가 개인의 판단으로 시작돼도, 그 후폭풍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를 때 신용은 수익률을 키우지만, 주가가 흔들릴 때는 손실의 폭을 키운다. 반대매매가 늘고 소비 여력이 줄면 그 부담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로 번진다.

 

가계부채 관리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담대를 누르면 대출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신용대출, 한도대출, 증권사 신용거래로 옮겨갈 수 있다. 정책이 한쪽 문만 바라보는 사이 다른 문으로 위험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총량 관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부채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떤 목적의 돈이 늘고 있는지까지 봐야 한다.

 

기타대출은 주담대보다 위험 신호가 늦게 잡히는 경우가 많다. 신용대출과 한도대출은 생활자금인지, 투자자금인지, 기존 부채를 돌려막기 위한 돈인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금융당국도 뒤늦게 은행권 자율관리를 점검하고 있다. 고액 연봉자의 신용대출 한도 축소 같은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빚투의 유혹을 막기 어렵다. 자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는 한 돈은 언제든 우회로를 찾는다.

 

가계부채는 부동산 문제이기 전에 금융 시스템의 문제다. 집값을 자극하는 대출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더 비싸고 더 짧고 더 불안정한 빚이 투자 열풍을 타고 늘어날 때 위험은 오히려 더 빨리 커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빚투에 나선 개인을 향한 훈계가 아니다.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 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위험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보는 정책의 시야다. 물길을 막으려면 둑만 높여서는 안 된다. 물이 새는 곳을 먼저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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