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국민연금 수익에 3조원 넘는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러한 주장은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연금이 1400억원 수준의 손실을 입었다고 강조해온 특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33차 공판에는 오후 증인으로 채준규 전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이 출석했다. 채 전 팀장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적정 합병비율이 1:0.46이라고 산정한 인물이다. 특검은 이를 기준으로 삼성이 국민연금에 1388억원의 손실을 끼쳤다고 강조해왔다.
채 전 팀장은 국민연금의 적정 합병비율로 내세운 1:0.46이 사실과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적정 합병비율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사업 시나리오에 따라 다양한 범위로 산정됐다"며 "1:0.46은 양사 전망이 중립인 경우 수치"라고 설명했다. 채 전 팀장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전망이 낙관, 삼성물산 전망이 비관인 경우 1:0.34가 적정 합병비율이다. 반대로 제일모직 전망이 비관, 삼성물산 전망이 낙관인 경우는 1:0.67이 된다.
채 전 팀장은 "적정 합병비율이라고 해도 객관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민연금의 주장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당시 범위가 아닌 하나의 수치를 제시하라고 해 양사 중립인 1:0.46이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0.34를 제시했어야 했다.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것 외에는 깡통회사"라고 후회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를 6.6조원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18.7조원에 달한다. 특검은 "재판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시가총액이 12조원 수준이었던 것 같은데 주가가 계속 오른다"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한편 구 삼성물산은 호주 로이힐 프로젝트 등 국내외 사업 부실로 2조60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일모직 전망은 낙관을, 삼성물산 전망은 비관을 적용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 전 팀장은 "2014년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한 뒤 삼성전자가 기업분할을 하고,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삼성물산이 다시 합병하면 삼성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가 완성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구축한 바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국민연금은 3조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삼성물산이 합병을 발표할 때 이제 시작됐다는 느낌을 받았다"이라고 공개했다. 1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며 연 1% 수익을 목표로 하는 국민연금에게 삼성물산 합병은 3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볼 수 있는 큰 기회였다는 의미다.
그는 "한국 증시의 배당성향은 15%였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면 배당이 늘어나는데, 막대한 기금 이익을 남겨 국민 노후를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덧붙였다. 배당성향이 중국 수준인 30%까지 올라가면 국민연금은 13조원을, 54%인 대만 수준까지 올라가면 40조원을 벌어들인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11월 특검 수사가 시작되며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했고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작업도 무산됐다. 특검이 최소 3조원, 최대 4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 확충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채 전 팀장은 "국민연금은 큰 그림을 바탕으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던 것"이라며 특검에게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