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1>피노누아에 대한 예찬 '사이드웨이'

영화로 맛보는 와인 ②사이드웨이(Sideways)
▲ /안상미 기자

"재배하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은 얇지만 성장이 빠르고, 카버네와는 달리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만 자라고. 인내심 없인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레스토랑 점원으로 일하는 마야가 영어교사 마일즈에게 "왜 피노누아를 좋아해요? 거의 광적이던데"라고 묻자 답한 말이다.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 '사이드웨이'는 마일즈와 잭의 일주일 간의 여행을 그렸다. 잭의 결혼식을 앞두고 이들은 산타바바라로 떠난다. 산타바바라는 카버네 쇼비뇽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보다 겨울에는 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 서늘해 온도에 민감한 피노누아가 잘 자란다. 보통 와인을 실컷 마실 여행이라면 나파밸리를 떠올리겠지만 피노누아에 푹 빠져있는 마일즈에겐 산타바바라가 최적의 여행지인 셈이다.

▲ /영화 '사이드웨이'의 한 장면. 와이너리를 찾아간 마일즈(왼쪽)와 잭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감성이 예민한 마일즈는 피노누아 처럼 까다롭다. 관심과 이해를 갖고 돌봐주는 이가 없는 마일즈는 그 맛과 향을 꽃피우지 못하고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견뎌내는 중이었다.

"우리 나이에 능력, 돈 없으면 도축장 직행할 소나 다름없어…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것이 없어. 난 창문에 묻은 지문 신세야."

마지막 희망이었던 책 출판도 무산된다. 마일즈는 더 이상 그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다는 말에 "버스매연 맛이야. 포도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통에 담아 짓이겨서는, 구강 세척제보다 형편없어. 최악이야"라고 평한 와인을 바스켓 채로 들이마셔 버린다. 엉망진창인 삶과 최악의 와인 맛이 절묘하게 겹쳐지며 어느새 보는 사람의 입맛도 씁쓸해진다.

이런 마일즈에게 절망의 길이 아닌 다른 샛길, 사이드웨이를 열어주는 것은 바로 마야다. 마야는 와인에 빗대어 마일즈의 삶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한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동안 돌봐준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당신의 슈발블랑 처럼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 삶을 마감하죠."

마일즈가 가장 아끼는 와인은 슈발블랑 1961년 빈티지다. 결혼 10주년에 따려고 아껴뒀지만 이혼한 아픔이 여전한 마일즈에게 슈발블랑은 묵혀둔 숙제와 같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슈발블랑은 생애 한 번쯤 꼭 마시고 싶은 꿈의 와인이다. 가격도 그만큼 비싸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슈발블랑은 특별한 날 따려고 한다는 마일즈에게 마야는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일 것이라 한다.

과연 슈발블랑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되었을까.

잭의 결혼식에서 전처를 만나고, 재혼에 임식소식까지 듣게된 마일즈. 여기서 마일즈의 아픈 가슴 못지않게 와인애호가들의 가슴도 찢어지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마일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가 슈발블랑을 테이블 아래 숨겨두고 콜라컵에 따라 홀짝거린다. 그렇게 슈발블랑은 플라스틱 컵 속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마야에게 뛰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단 점에서 보면 마일즈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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