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현아 사랑해

'선영아 사랑해.' 2000년 3월, 온동네 전봇대와 전철역을 가득 메운 이 문장이 세상을 흔들었다. 당시 이 포스터를 본뜬 고백으로 학교는 몸살을, 학생은 열병을 앓았다. 문장의 정체는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의 티저광고였다. 세기말과 21세기의 간극을 절절하게 채워준 이 고백은 이제 전국민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선영이는 사랑받아 마땅한 이름이 됐다. 하지만 광고의 주인공인 포털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질이 묻히고 상징만 소비되는 상황은 '#미투'에서도 이어진다. 서지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의 이름은 지난해 1월 29일 이후 명사가 되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8월, 과거 자신이 성추행했던 서 검사가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발령되는 과정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23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왜곡된 관념은 여전히 뿌리깊어,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서 검사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서 "많은 검사들이 '검찰에서 앞으로 성범죄가 근절될 지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질 지 장담할 수 없지만, 누구도 서지현처럼 입을 열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며 "2차 가해가 사라지지 않으면 성범죄 근절과 공정한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 검사가 들었다는 말이 전국 검사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다면, 한국 최고 수사기관의 미투는 실패한 셈이다.

검사는 구형을, 법원은 판결을 내린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도 우려를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무죄 선고다. 이제는 성폭력 기준을 강압적 수단 사용이 아닌 '동의 없는 성적 행동'으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검사의 기소·구형과 법원의 판단 근거인 법을 만드는 국회가, 비슷한 법을 유행처럼 무더기 발의해 생색 내려 한다는 지적도 되새겨야 한다.

요즘은 증강현실 기술 덕에 '선영아 사랑해'를 곳곳에 붙일 수 있다. 오늘 퇴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에 '지현아 사랑해'를 붙인다면, 그에게 "진실과 정의를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미투는 유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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