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서울] (48) 국일고시원 앞 노동존중특별시가 세운 '전태일 기념관'

▲ 지난 3일 청년 전태일이 서울시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가 반세기 만에 청계천 수표교에 다시 띄워졌다./ 김현정 기자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동심들을 사회생활이라는 웅장한 무대는 가장 메마른 면과 가장 비참한 곳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아무리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조그마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합법적이 아닌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 전태일은 공장 근로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같이 고발했다. 전태일이 서울시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가 반세기 만에 청계천 수표교에 다시 띄워졌다.

서울시는 국내 최초의 노동복합시설인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을 조성해 노동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시민에게 공개했다.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는 공간

▲ 3일 전태일 기념관을 찾은 시민들이 19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작업장을 재현해 놓은 다락방에 들어가고 있다./ 김현정 기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장소인 평화시장에서 1호선 종각역쪽으로 청계천을 따라 약 20여분을 걷다 보면 누군가 일필휘지로 적어내린 편지 한 장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글은 전태일 열사가 1969년 12월 19일 서울시 근로감독관에게 전한 진정서다. 글은 금속재 스크린 벽이 입혀진 주황색 벽돌 건물에 가로 14.4m X 세로 16m 크기로 새겨졌다. 건물 밖을 지나는 사람 누구나 전태일 열사의 의지가 담긴 편지를 읽을 수 있도록 설치해 노동권익 상징시설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시는 설명했다.

지난 3일 청년 전태일을 만나기 위해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을 찾았다. 기념관은 서울 종로구 관수동 자리에 지상 6층, 연면적 1920㎡(580평) 규모로 지어졌다. 지상 1~3층은 전태일 기념공간으로, 4~6층은 노동자 권익지원 시설로 꾸며졌다.

▲ 지난 3일 전태일 기념관을 방문한 한 시민이 방명록이 걸린 나무를 구경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식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관 1층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 노동자, 학생, 정치인 유가족들의 삶과 투쟁을 담아낸 '의문사 진상규명 30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2층 공연장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전태일의 삶을 기록해 놓은 상설전시실 '이음터'와 그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놓은 기획전시실 '꿈터'로 구성됐다.

이날 전태일 기념관에서 만난 대학생 김예지(20) 씨는 "전태일 열사가 하루 14시간 넘게 일했다는 다락방에 들어가봤다"면서 "환풍기 설치도 안 되어 있고 허리도 안 펴지는 곳에 갇혀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다"며 울상을 지었다.

전시실에는 19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작업장을 재현해 놓은 다락방이 설치돼 있었다.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1.5m도 되지 않는 낮은 천장 때문에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 없었다고 한다.

충북 괴산에서 온 강준희(53) 씨는 "전태일 열사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이라며 "노동자 권익 증진을 위해 힘쓴 전태일 열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다행이다"며 미소 지었다.

◆갈 길 먼 노동 존중 사회

▲ 3일 전태일 기념관을 찾은 시민이 '태일피복'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3층 꿈터에는 전태일이 구상한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이 조성돼 있었다. 태일피복은 전태일이 1969~1970년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태일피복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48시간이다. 당시 평화시장 평균 노동시간인 105시간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월급은 3000원으로 책정됐다. 1970년대 짜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100원이었다. 근무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천장높이는 기존 1.5m에서 3m로, 층당 1개였던 화장실은 샤워실을 갖춘 대형 화장실로 바꾸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날 전태일 기념관을 찾은 이종훤(65) 씨는 "청년 전태일이 우리나라 노동환경 개선에 기틀을 닦아 놓은 건 사실이다"며 "그러나 아직도 '노조'라고 하면 질색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 존중 사회라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 지난 3일 전태일 기념관에서 약 292m 떨어진 청계3가 사거리 건널목에서는 '청계천 재개발 결사반대!'라고 쓰인 붉은 현수막이 걸린 천막을 볼 수 있었다./ 김현정 기자

지난해 11월 9일 전태일 기념관 바로 앞 건물인 국일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거주자들은 40~70대 일용직 노동자였다.

이날 전태일 기념관에서 약 292m 떨어진 청계3가 사거리 건널목에는 '청계천 재개발 결사반대!'라고 쓰인 붉은 현수막이 걸린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가 2018년 9월 발표한 핵심 정책에는 일자리 창출과 자영업자 지원정책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는 어떻게 정책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냐"며 "청계천 상인들을 다 몰아내는 것이 어떻게 일자리 창출과 자영업자 지원이냐"고 묻고 있었다.

시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은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만연한 현시대에 꼭 필요한 전태일 정신을 확산하고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려 노동존중사회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노동자의 권익보호는 물론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펼치는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의 상징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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