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독립군 및 광복군은 어떻게 싸웠나-(하)항일무장군의 복제 변천

3.1운동 이후 독립군 및 광복군은 어떻게 싸웠나-(하)항일무장군의 복제 변천

군복은 군인의 명예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통일성과 피아식별, 전투를 하기위한 기능을 모두 담고 있다. 3.1운동 이후 독립군·광복군 등 항일무장군은 어떤 군복을 입었고, 오늘날 국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항일무장군의 군복은 지역과 시기를 고려해 두 방면으로 구분 할 수 있다는 게 복식 전문가들과 관련 군사매니아들의 견해다.

시기적으로 앞섰던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림군 군복과 중화민국(국민당 정부)를 따라 상해와 중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광복군의 군복으로 나눠 볼 수 있다.

▲ 고종황제에 의해 제정된 대한제국군의 군모와 군복.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배꽃과 전총의 무궁화로 장식됐다. 사진=군복제사 발췌

■ 통일되지 않았던 독립군의 군복

서구의 복장을 기본으로 한 근대적 군복은 구한말 신식군대의 창설과 함께 도입됐다. 러일전쟁 이전까지 우리 군복은 청나라(중국), 러시아, 일본의 세력 판도에 따라 바뀌어 짧은 기간 동안 통일성을 갖추기 힘들었다.

1899년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제정·반포하면서 군권을 황제에게 직속시키는 원수부(元帥府)를 설치하고 무관의 복제를 육군복장규칙에 따르도록 했다.

당시 대한제국군은 프랑스식 군복제를 바탕으로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 매듭이 새겨진 군복과 배꽃이 새겨진 군모를 착용했다. 이러한 전통은 1907년 대한제국군이 해산될 때까지 이어였다.

대한제국군 출신들이 의병과 독립군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근근히 대한제국의 군복이 독립군의 군복으로 명맥을 잇기는 했지만, 극히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창기 독립군은 소규모로 분산돼 있었고 정상작인 보급체계와 군복의 생산시설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방군사연구소가 1997년 발간한 군복제사에 따르면 각지의 소규모 독립군들은 중국인들의 복장을 하거나, 별도의 모자 또는 표지를 제작해 군인임을 나타냈다.

▲ 항일결사대가 착용한 군복과 일부 독립군 부대가 사용한 표지 사진=군복제사 발췌

1919년 12월 15일 일본 고등경찰 제35383호, 항일결사대의 복장 등에 관한 보고서는 항일 결사대의 복장을 그나마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항일결사대는 목면으로 만든 군모와 군복을 착용했고 군모에는 태극기가 부착돼 있다.군복의 디자인은 당시 일본군복과 유사하게 옷깃장과 어깨의 견장대가 있어 계급장을 부착할 수 있는 형태다.

탄약을 수납하는 탄약대는 중국군과 유사한 형태였고 배낭은 거칠은 마대를 둥그렇게 묶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많지 않은 당시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초창기 독립군들은 소규모의 비정규 전투를 수행했기 때문에, 환경적 지리적 조건에 따라 중국옷, 중국군복 때로는 소련군복을 활용해 착용했다.

군복의 색상은 황색, 다갈색, 쥐색, 다갈색 등이 사용됐고, 위장효과 등을 고려해 황색 등의 은닉형 색상이 많았다.

■통일된 규정을 갖춘 광복군

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는 1945년 1월 9일 '군인의 각종 표지(標識) 제정안'과 같은 해 2월 19일 '군인제복 양식(樣式) 제정안'을 통해 광복군 고유의 군복을 갖추게 했다.

이 제정안들이 제정되기 전까지 광복군도 일정한 제복이 없어, 중화민국군의 영향을 받은 군복과 표지를 사용하거나, 연합군측으로부터 제공받은 군복 등을 사용했다.

건물임대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정적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화민국측과 협조와 공채발행, 외국의 차관 등으로 제정 압박을 해결해 나갔다.

광복군은 정장과 전투복을 각각 제정했는데, 정장은 정복과 정모로 구성됐다. 정복의 상의 소매에는 장군급과 영관급 장교에 한해, 장군급은 황색을 영관급은 은색의 장식을 부착했다.

▲ 광복군의 전투복 삽화와 광복군의 계급 사진=군복제사 발췌

전투복은 면직으로 만들어진 전투복(광복군 정복과 같은 제식)과 전투모를 착용하고 편상화라는 구두에 각반을 다리에 둘렀다. 장교의 경우 무궁화 표지의 색깔로 계급을 구분했는데, 장군급은 적색, 영관급은 황색, 위관급은 청색의 수식 바탕을 사용했다. 무궁화의 색깔도 장군급은 금색, 영관급은 은색, 위관급은 동색의 계급을 부착했다.

뿐만아니라 오늘날 국군처럼 장교와 병의 각 병과별 표지도 제정해, 정규군의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항복을 선언한 탓에 광복군이 꿈에 그리던 국내진공작전은 무산됐다. 미군정에 의해 광복군 인사들이 개인자격으로 들어오면서, 애써 만든 우리 군 고유의 군복의 명맥은 또 한번 끊어지게 됐다.

광복 이후 창설된 국방경비대와 육사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는 일본군 군복과 미군의 군복을 혼용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창군초기 국군의 계급과 병과별 표지는 미군의 형태를 따게 돼, 수차례 계정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육군과 공군은 2017년 9월 군인복제령 일부개정안에 따라 정복과 예복이 통합된 현제의 정복을 갖추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대한제국군과 광복군의 전통을 살리는데는 부족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의 전통을 중시여기는 선진국들은 군복의 현대와 함께 전통의 복원을 함께 고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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