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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새로나온 책] 중동태의 세계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박성관 옮김/동아시아

누군가 당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총으로 위협당해 돈을 건넸다면 그것은 내가 능동적으로 행한 일일까, 아니면 수동적으로 당한 것일까? 능동과 수동에 갇히면 행위를 자발이냐 강제냐의 도식 아래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는 그동안 우리가 '능동-수동 언어 체계'에 갇혀 살아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능동적이라 간주된 주체는 행위에 책임질 것을 추궁당한다. 반대로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면 무시당하기 일쑤다. 어느 쪽이든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고대 이전에는 사람의 행위나 사건을 능동-수동 이분법에 가두지 않았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핵심적인 목표도 진정한 행위자, 즉 진짜 책임자를 찾아내는 게 아니었다. 이러한 고대 언어 체제에서 중요했던 건 '중동태'(中動態, middle voice)였다.

언어학자 벤베니스트는, 행하느냐 당하느냐가 문제될 때의 능동과 수동의 대립을 넘어 주어가 과정의 바깥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가 문제가 되는 능동과 중동의 대립에 주목한다. 고쿠분 고이치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능동과 중동의 대립 전에 모든 언어의 원형으로서 중동이 있다는 가설에 이른다. 행위의 주체보다 사건으로서의 행위가 먼저였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사건에 주체를 귀속해 자유 의지를 부여하고 책임을 묻게 된 것은 아주 훗날의 일이다. 저자는 중동태를 현 세계로 불러내자고 제안한다. "중동태가 일상 속에 활성화된다면 우리는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사회 구조나 개인의 의지로 환원되지 않는 측면들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408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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