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기꺼이 포기할 것들

홍경한(미술평론가)



미술현장을 외면했다며 2013년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 몰려가 시위까지 벌였던 이들은 오늘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달에 8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는 미술현장을 대변하는 게 서울대 출신 작가들로 채워진 전시에 항의하는 일보다 가벼운 것일까.

대작 논란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한 조영남 사건에는 성명서 발표와 고소까지 진행했던 미술단체들은 정작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견작가들의 현실에 대해선 말이 없다. 누군가의 작업실엔 팔 그림이 없어 그림이 없고, 누군가의 작업실엔 퍽퍽한 삶을 사느라 그릴 시간이 없어 그림이 없는 양극화현상을 우려하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들이 유통시장에 직접 뛰어 들어 박리다매로 작품을 팔게 하는 기이한 양태를 조장해온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정책을 수년 째 접하면서도 한국 미술계 식자라는 자들은 별 다른 비판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이 깔아 놓은 무대에 올라 원고료 몇 푼에 이름을 빌려주고 무색무취한 글을 통해 적당히 동조한다.

하긴, 문제가 있어도 유구무언하거나, 유사한 사안이라도 그때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는 미술계 인사들의 모습은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일례로 '내 사람 심기'라는 구태의연한 정치권력의 독선에 대항한 사례로 남은 2013년 '부산비엔날레' 파행 사태 당시 문화예술단체를 비롯한 소장파 기획자 및 평론가들은 민주적 절차의 옹립과 원칙 추구를 외치며 감독 선임절차 과정에서 드러난 비민주적 양태에 보이콧(Boycott)까지 불사했다.

현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장이었던 그는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사태"라며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한 입장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약 6년의 시간이 흘러 그 또한 불합리한 문화행정과 '코드 인사' 의혹의 주인공이 되었고,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어떤 단체도 반발하지 않았다. 2013년 당시 윤 관장과 함께 공정성과 투명성, 절차의 민주성을 외치던 이들조차 침묵의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자신과 관계된 문제라면 기꺼이 누군가에게 맞서지만 누군가를 위해 맞서는 모습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게 작금의 미술계이다. 보신주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밴 무능과 권태로운 욕망 외엔 물려줄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이들이 소위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이끈다는 사람들이다.

매번 이런 글을 써봐야 달라질 것 하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보면 문득문득 되묻게 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집요하며, 시니컬한 이미지로 기억될 것을 모르진 않음에도 그 욕망의 분동에 비례해 책임감과 책무 또한 준수해왔는지 궁금해진다.

예술가들이 버틸 수 있도록 기반조성과 자생력 확보에 힘을 보탤 책임, 사회 속 예술의 위치를 견고히 다져야할 책무, 흔들림 없는 신념과 소신으로 건강한 미래를 지향하며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비전에 공들일 책임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긍정적으로 읽히진 않는다. 그들의 궤적과 모든 태도의 중심에는 이해관계와 이익을 배제하지 않은 사적 혹은 공적 욕망이 들어 있었고, 그토록 되뇌던 정의로움을 포함한 부당함에 대한 분노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혜택 앞에선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기꺼이 포기할 것들이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