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기사이미지
[기자수첩] 플랫폼의 실수가 소비자 탓?

월세, 식비, 통신비 등 숨만 쉬어도 드는 비용이 있다. 비용은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급격히 늘어난다. 교통비, 회비, 사람마다 의류비까지 포함되니 말이다. 최근 숨의 무게가 무거워 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유는 구독료와 수수료. 저렴한 가격에 시작했던 쿠팡, 유튜브, 넷플릭스는 이제는 만원에 구독할 수 없다. 수수료도 마찬가지다. 모든 플랫폼에 이름없이 붙는 수수료는 우리부담으로 이어진 지 오래다. 최근 여행을 준비하며 항공료를 결제하다 대행료(수수료)를 두번 결제했다. 아니, 결제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항공료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지 플랫폼 수수료가 2만원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수수료가 항공료를 결제할 때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항공료 결제 과정만 거쳐도 내야 했던 것. 문자가 온 곳으로 전화를 했지만 상담사 연결은 쉽지 않았고, 당황한 손길은 웹의 어느 곳으로 향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일대일 문의를 통해 수수료를 환불받았지만 문자를 확인하지 못했더라면, 문자를 스미싱으로 오해했더라면, 웹의 문의란에 글을 남길 생각을 못했더라면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플랫폼은 편리함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시간을 줄이고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전에는 직접 지점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면 이제는 앱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소비자들은 플랫폼의 실수조차도 소비자의 눈으로 찾아야 한다. 알림 한 줄 없이 붙는 수수료, 결제 단계에 숨어 있는 옵션, 환불이나 취소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추가 비용들까지 결국 사용자가 직접 '검증'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구조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다. 비용과 정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투명한 편리함'이다. 플랫폼은 편리함의 이름으로 가격이 불분명해지고, 책임의 무게가 소비자에게 이동되지 않도록, 플랫폼은 그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플랫폼의 실수를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탓이 되지 않기를. 플랫폼의 실수로 인한 금액으로 숨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2025-11-27 13:33:36 나유리 기자
기사이미지
[기자수첩] '딸깍' 소리에 발작 버튼 눌리네

신조어를 좋아한다. 우리 사회의 우스꽝스러운 세태를 촌철살인의 풍자로 풀어낸 표현들이 주는 묘한 쾌감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발작 버튼 눌렸다'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이 유행어(?)는 누군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할 만한 트리거를 건드렸을 때 사용되곤 했다. 버튼을 누르면 나는 의성어 '딸깍'이 자주 함께 쓰였다. 최근 AI(인공지능)의 부상과 함께 '딸깍'의 쓰임새도 달라졌다. 이제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로 무언가를 대충 쉽게 해내는 모습을 빗대는 말로 쓰인다. 필자는 'AI 전문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내세운 취재처가 답변을 늦게 줄 때면 "명색이 AI 전문기업이라면서 '딸깍'도 못 하나?"라고 혼잣말을 궁시렁거리곤 했다. 회사 LLM(거대언어모델)에 질의서를 넣고 답변 초안을 받아, 팩트 체크하고 표현만 좀 다듬으면 10~15분에 끝날 일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얼마 전, 이 '딸깍' 소리에 발작 버튼이 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발자인 지인에게 "AI 때문에 개발자들 다 잘린다는 데 정말 큰일이다"라고 '걱정'해줬더니 그쪽에서 "기자도 곧 아냐? 기사는 '딸깍'하면 하루에 100개, 1000개도 금방이잖아"라고 맞받아쳤다. 취재원의 답변을 기다리며 투덜거렸던 과거가 떠올랐다. 혹 그간 내가 다른 사람의 노고를 '딸깍'이라는 두 글자로 평가절하해왔던 건 아닐까. 나는 그리고 어쩌면 당신 혹은 우리는, 그간 '딸깍'이라는 말로 비아냥대며 타인의 수고와 노력을 얼마나 많이 후려쳐왔던가. 며칠 전 기사를 준비하며 홍경한 미술 평론가에게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예술 창작 분야가 가장 빠르게 AI에 잠식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답변이 이 '내로남불 딸깍 사태'를 풀어줄 실마리가 될 것 같아 덧붙인다. "일단 아직까진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갔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몇몇 주요 미술관에서 AI와의 창작에 호의적인 것은 맞고, 언론은 그것을 침소봉대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작가들은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업한다. 도구로써의 AI와도 거리를 두는 작가들이 많다. 사회적 현상에서만 보면 갈수록 저항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제가 아는 한 절대다수다."

2025-11-26 16:33:52 김현정 기자
메트로칼럼
지난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