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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용금융의 역설

"실제로 금융사에 돈 빌리고 안 갚으면서 외제차 빌려 타고 다니는 사람들 많습니다. 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도 꼬박꼬박 대출을 상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포용 금융의 사각지대다. 포용 금융이란 이름 아래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할 제도가 오히려 엉뚱한 이들까지 감싸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채무자 보호 정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성실 상환자와 비성실 상환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부족하다고 본다. 장기 채무 탕감이나 채권추심 규제 강화가 필요한 측면은 분명하나, 의도적으로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들까지 보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포용 금융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범위를 어디까지 넓혀야 할지 모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과정에서 건전성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출 심사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 설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준의 합리성 문제도 제기된다. 포용 금융으로 채무자 보호 기조가 강화되면서 채권추심 현장에서는 각종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추심 업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면서 정상적인 채권 회수 활동까지 위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추심 업무의 경우도 채무자가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시간대를 벗어나 추심을 못 하게 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부업에서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하게 추심을 강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매입채권추심 허가제를 둘러싼 불만도 나온다. 또 다른 대부업계 관계자는 "허가제로 전환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허가 요건을 충족하기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취지만 내 걸 것이 아니라 포용 금융의 세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되 성실 상환자와 비성실 상환자를 선별해 지원할 수 있는 합리적 세부 기준이 특히 필요하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이들이 더 큰 혜택을 누리는 역선택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합리적이고, 세부적인 기준 마련뿐이다.

2026-06-22 07:21:05 안재선 기자
[기자수첩]뱃사공만 많은 가상자산법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기본법'의 입법이 표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법(미카·MiCA)과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 등 입법 기준은 뚜렷한데도, 정치권에서는 '대동소이'한 법안을 쏟아내며 입법의 공로(功勞)를 다투고 있어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5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 정무위원회에 입법이 제안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29건이다. 그러나 국회 임기가 절반을 지나 후반기 국회 출범을 앞두는 2년 동안 정무위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에서 논의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다수의 법안이 위원회에서 표류중이지만 각 법안이 포함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주된 내용은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하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자지급 허용 문제, 감독 주체 등에서 각 법안 간에 차이가 있지만 가상자산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데는 여·야 간 이견이 없다. 여·야 간에 견해차가 크지 않은데도 입법이 지연되는 것은 입법이 확실시 되는 법안을 두고 입법의 공로를 가져가려는 경쟁이 과도해서다. 22대 국회 출범 이후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만 15명에 달하고,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 수도 60명을 넘긴다. 전반기 국회에서 입법을 주도했던 여당의 '디지털자산 TF'에서도 입법 주체만 여럿이다. 정치권이 입법의 공로를 다투는 동안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경쟁력 약화와 매출하락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가상자산 가격 하락 및 거래량 감소로 주요 원화거래소들의 매출이 급감했는데도, 국제 표준에 뒤쳐진 규제를 해소하고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약속했던 정치권은 뚜렷한 입법 시한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져올 금융결제환경의 변화를 준비하는 금융권과 핀테크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실증을 통해 관련법 입법과 동시에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준비를 마쳤는데도, 입법 일정이 밀려나며 본격적인 경쟁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입법을 더는 늦출 수 없다고 말한다. 수수료 수입 감소로 5개 원화거래소 가운데 4곳이 적자를 겪고 있으며, 국제 표준에 뒤쳐진 투자환경에 국내 투자자들도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가고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도 입법의 공로를 다투기보다, 현실적인 입법 목표와 기한을 조속히 제시해야 할 때다.

2026-06-18 11:14:36 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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