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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프라다를 입은 악마에게 묻는 조직윤리

지난 2006년 개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속편이 공개된다. 20년 전 영화지만 대중은 여전히 편집장 '미란다'의 카리스마와 비서 '앤디'의 화려한 변신을 추억한다.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를 배경으로 치열한 커리어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정작 오늘날 관객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또 다른 비서 '에밀리'의 얼굴이다. 에밀리는 파리 패션위크를 목표로 버티고 있지만 패션에는 관심 없다던 굴러들어온 돌 앤디가 그 기회를 빠르게 차지한다. 에밀리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해'라고 외치며 조직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데 앤디는 조직을 수단으로 여긴다. 결국 앤디는 런웨이를 떠나며 '미란다 비서 출신'이라는 명성을 활용해 원하는 곳으로 점프한다. 이때 영화 제목은 현실의 문장으로 다시 읽힌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 현실도 종종 그렇게 흘러간다. 앤디의 서사가 영리한 '이직 성공 사례'가 된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에밀리들은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격하되곤 한다. 앤디는 파리 출장을 가로챈 미안함을 명품 옷 몇 벌로 표현하고 에밀리의 입꼬리가 씰룩이는 장면이 연출된다. 에밀리가 원하는 것은 물질보다 자신이 쏟은 열정에 대한 인정과 성취였을 테지만, 노력과 결과가 어긋난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 역시 본질적인 갈등을 소모품적 보상으로 봉합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5월에는 각종 기념일이 있어 연휴가 이어지는 동시에, 휴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근로 또한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의 비대칭성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경제 선순환을 위해 누군가는 일해야 하며 남들이 쉴 때 두 배로 뛰어아 하는 직군도 존재한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현장 사수는 기회를 쫓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앤디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린 에밀리들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존중 결핍이다. 조직이 효율성에 중점을 두는 것은 숙명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다시금 짚어본다. 앤디가 떠난 후의 에밀리는 K직장인의 단면이다. 프라다 뒤, 보이지 않는 근로의 소외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 20년 만에 다시 만날 악마들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직 윤리다. /이청하기자 mlee236@metroseoul.co.kr

2026-04-29 13:53:17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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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산업이 계급을 가르는 시대

한 명품관 직원이 허름한 점퍼 차림의 손님을 무시한다. 그러나 점퍼 안쪽에서 SK하이닉스 로고가 드러나자 태도는 곧바로 바뀐다. "하이닉스느님?" 쿠팡플레이 'SNL코리아'의 한 장면이 화제다. SK하이닉스 직원이 하나의 밈처럼 소비되는 것은 단순히 성과급이 역대급으로 예상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SK하이닉스 로고가 더 이상 회사명이 아니라 보상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는 상징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같은 직장인이라도 어느 산업, 어느 회사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 이른바 '급'이 달라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이 성과를 낸 만큼 임직원에게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격차가 개인의 노력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공지능 수요와 반도체 호황은 일부 산업에 막대한 보상을 몰아주고 있다. 반대로 다른 산업의 노동자는 비슷한 시간을 일해도 그만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들에게 취업은 더 이상 직무 선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산업의 호황에 올라타느냐가 커리어의 출발선을 가르는 문제가 됐다. 개발자든 사무직이든, 직무가 같아도 반도체·AI처럼 돈이 몰리는 산업에 있느냐에 따라 보상과 평판은 달라진다. '하이닉스느님'이라는 농담이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직무보다 산업, 노력보다 시장의 파도가 개인의 몸값을 먼저 결정하는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격차를 모두 없앨 수는 없다. 없애는 것이 정답도 아니다. 그러나 격차를 줄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산업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재교육의 기회가 부족하고, 중간 수준의 일자리가 약해지면 격차는 곧 계급이 된다. 격차가 커질수록 개인의 노력만으로 그 차이를 따라잡기 어렵고, 산업의 흥망이 개인의 삶까지 과도하게 좌우하는 구조로 굳어지기 쉽다. 성과는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 다만 산업의 호황이 일부에게만 계층 이동의 기회로 작동하고, 그 밖의 일자리에서는 삶의 전망이 희미해지는 구조는 경계해야 한다. 직무 전환 교육과 산업 이동 지원, 중간소득 일자리 보호가 더 촘촘해져야 하는 이유다. SNL의 장면이 던진 질문은 가볍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성과급보다 더 크게 봐야 할 것은 한 기업의 호황이 아니라, '산업의 격차가 개인의 미래를 어디까지 갈라놓고 있는가'이다.

2026-04-28 14:33:02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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