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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산업일반

'빅 블러'의 시대, 기업 간 합종연횡 A to Z

지난해 7월 7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충남 서산 SK 이노베이션 배터리 생산 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SK 회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SK 이노베이션 제공

'빅 블러(Big Blur)' 시대가 왔다. 빠른 기술 변화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비즈니스 간 경계는 흐릿해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진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기업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자사의 역량을 넘어선 도전은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 단일한 시장에서 점유율 극대화를 위해 추진했던 지난날의 기업 간 제휴와 동맹에서 협력과 동맹이란 말을 꺼내기 힘들었던 기업들의 합종연횡(合從連衡)으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연초부터 기업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종 산업간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기업 간의 합종연횡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다.

 

◆왜 기업 간 합종연횡인가

 

'빅 블러'란 블러(Blur)는 흐릿해진다는 의미로,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빅블러 현상이 경영계 전반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는 2일 "최근 일어나고 있는 기업간 합종연횡은 협력적 경쟁(Competition)이다. 기업 간 전략적 제휴, 사주 간 네트워크, 컨소시엄뿐만 아니라 인수합병도 합종연횡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계 기업들은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뛰어난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 전략적 동맹을 맺으려고 한다.

 

권 교수는 "합종연횡이 일상화된 건, 특정 산업이나 공고했던 기존 영역이 전혀 다른 산업과 기술에 의해 파괴 당하기 때문"이라며 "산업의 경계선을 이전보다 훨씬 넓혀서 동종업계뿐만 아니라 이종산업에서도 기업들이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자동차 및 반도체 분야의 인수합병도 모두 합종연횡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라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업간 합종연횡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개척해 신시장을 주도하려는 유형이다. 4차 산업혁명 수혜 기술인 전기차, 인공지능(AI), 수소 등 분야에서 활발하다.

 

전기차는 이 중 가장 뜨거운 분야다. 기업들의 ESG 경영 열풍과 바이든 행정부의 파리기후협약 복귀로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전기차 시장은 국내 기업들이진입해야할 영역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지난해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월 구광모 LG 회장, 7월과 9월 최태원 SK 회장을 만나 전기차 배터리 협력 방안을 논의해 전기차 협력 광폭행보를 이어나갔다.

 

현대차와 SK네트웍스가 협력해 운영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길동 채움'. / SK 네트웍스 제공

이러한 협력의 가시적인 결과물로 지난 달 20일 현대차와 SK네트웍스 의기투합해 만든 전기차 충전소 '길동 채움'을 공개해 운영중이다.

 

이외에도 애플이 현대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을 논의했고 LG 전자가 전기차 부품 협력사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EV 파워트레인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전기차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길 원하는 기업들이 다양한 유형의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AI 분야는 통신사와 포털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KT 주도 'AI 원팀'은 LG 전자, 엘지 유플러스, 카이스트, 전자통신연구원, 현대중공업, 한양대가 참여했고 네이버는 라인, 네이버랩스, 동남아 대학 및 기업들과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벨트를 꾸렸다. SKT 주도의 'AI 초협력'은 삼성전자와 카카오가 함께하고 있다.

 

수소는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경제 정책과 맞물려 많은 기업간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친환경차, 수소 기술 협력 강화를 하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포항에서 도시락 봉사를 함께하며 사주 간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또한 수소 사업 추진단을 꾸린 SK는 최근 수소 기술을 확보한 미국 플러그 파워의 지분을 취득했다. 효성은 린데 그룹과 조인트 벤처를 통해 3000억 원을 투자, 울산에 액화수소 공장을 신설했다.

 

4차산업혁명 유망 기술인 '드론'에서도 한화와 SK가 손을 잡고 도심항공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달 27일 네이버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비엔엑스에 총 4119억원을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다. / 각 사 제공

◆외연 확장, 콘텐츠 강화

 

다음으로 기업의 외연을 넓히고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기업 간 합종연횡이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네이버 사옥을 직접 찾아가 네이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CIO)를 만났다. 온오프라인 통합에 나서고 있는 신세계가 이커머스 공룡 네이버에 손을 내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신세계는 지난주 SK로부터 야구단 'SK 와이번스'를 인수했다. 야구단 운영의 흥미를 잃은 SK와 대중적인 콘텐츠 유통 통로를 확보하려는 기업 간 합종연횡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7일에 BTS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비엔엑스(beNX)가 네이버의 브이라이브 사업부를 인수했다. 네이버는 비엔엑스에 총 4119억원을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하고 2대 주주가 됐다. 이를 통해 비엔엑스가 운영하는 팬 플랫폼 위버스와 브이라이브의 사용자, 콘텐츠, 서비스를 통합한 새로운 글로벌 팬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 예정이다.

 

또한 네이버는 CJ E&M, 스튜디오 드래곤과 주식을 맞교환하며 각각 3대 주주와 2대 주주에 올랐다.

 

위기 극복과 리스크 관리를 위한 합종연횡도 있다. 국내 건설사는 재개발, 재건축 자금 부담 때문에 컨소시엄을 만들어 수주를 진행하고 있고 제약계는 한국혁신의약품 컨소시엄을 만들어 위험과 자금 부담을 덜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유통업계도 백화점들이 배달업체와 제휴를 맺고 백화점 입점 식당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간 제휴를 선보이고 있다.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

 

전문가들은 기업 간 유의미한 합종연횡을 유지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필요한 본질적 요소가 '기업 간 상호신뢰'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 간 상호신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한 권교수는 당사자 간 반드시 지향하는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교수는 "단기 이익에 초점을 둔다면 상대는 언제든지 자사의 성과를 위해 협업이나 신뢰를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2012년 넥슨이 NC소프트의 지분을 14.7% 인수해 동맹을 맺었던 적이 있었으나 넥슨이 NC소프트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면서 둘의 사이는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이 된 꼴이 됐다.

 

박병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간 관계 무조건 적인 신뢰가 있기 어렵듯이 기업간 관계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하며 기업 간 상호 신뢰에 있어 ▲이해관계 일치 ▲소통 통로 구축 ▲분쟁 해결 절차 마련 ▲국제적 경쟁력 보유한 파트너 선정 ▲오랜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뛰어난 전기 트럭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 '제2의 테슬라'라고 불렸던 니콜라는 공매도 전문 리서치 기관 '힌덴버그 리서치'의 니콜라 허위 광고 폭로로 트레버 밀튼 설립자가 사퇴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악순환을 겪었고 결국 제너럴 모터스와의 투자 협력이 결국 물건너 갔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의 역량

 

권교수는 개인이나 투자자들이 합종연횡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협력인지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고 기업 간 협력의 투명성을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실패 사례는 늘 상호 중복되거나 겹치는 사업 간 일어났다. 겹치는 영역에서의 협력은 학습 요소가 많지 않다"며 "투명한 기업이 상호 협력을 통해 더 많은 성과를 낸다는 건 경영학 연구에서도 다수 결과가 제시된 상식"이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기업의 역량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제휴가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 성공보다 실패하는사례가 더 많다"며 "개별 기업에 미치는 효과는 구체적인 계약내용을 살펴보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들고 그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더라고 그 효과를 어느 기업이 더 가져가느냐 하는 것은 그 기업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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