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사회공헌, 투명한 지배구조를 강조하는 'ESG 경영' 열풍이 최근 식품업계의 머리를 흔들고 있다. 80여 년 된 범 LG가(家) 장자승계 원칙이 깨지는가 하면, 57년 남양유업 오너경영이 무너지기도 했다. ESG경영 트렌드속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되새겨 보게 하는 사건들이 식품업계에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워홈은 지난 4일 주주총회를 열고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셋째딸 구 신임 대표가 제안했던 신규이사 선임안, 보수총액 한도 제한안 등을 모두 통과시켰다. 곧바로 열린 이사회에선 구본성 전 부회장을 해임을 승인하고 구 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구 전 대표를 비롯해 장녀 구미현씨, 차녀 구명진씨 등 아워홈 세 자매는 약 59%에 달하는 지분율을 앞세워 38.56%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구본성 부회장을 경영 2선으로 밀어냈다.
아워홈은 2000년 LG그룹으로부터 계열에서 분리된 사실상 별도 회사다. 하지만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 구자학 회장이 설립한 회사라는 점에서 범 LG가로 구분된다. LG그룹의 구씨 가문은 장남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형제들이 일부 계열사에서 분가해 나가는 방식으로 분쟁의 여지를 원천 차단해왔다. 80여 년간 이어온 LG가의 장자 승계 원칙은 경영권을 손에 쥔 구지은 아워홈 대표로 인해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구본성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밀려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구 부회장에게 휩싸인 도덕성 논란이다. 앞서 지난 3일 보복운전으로 차량을 파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구 부회장은 특수재물손괴·특수상해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던 구미현씨가 돌아선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ESG경영이 식품업계 화두로 오른 상황에서 구 부회장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새롭게 대표에 오른 구지은 대표는 구본성 부회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윤리·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도덕성 논란으로 경영권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사실상 남양유업이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부터 사회적 논란을 꾸준히 생성해오던 국내 2위 우유업체인 남양유업의 오너경영은 57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64년 창립된 남양유업은 홍원식 전 회장이 최대주주로서 절대적 경영권을 행사해 온 기업이다. 이사회 역시 6명 중 3명이 오너 일가였다.
남양유업의 몰락에는, 잦은 구설과 경영 실책으로 물의를 빚고도 재발 방지에 실패한 것에 있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을 비롯해 외조카 마약사건, 경쟁업체 비방 댓글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 급기야 지난 4월 '발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역풍을 맞았다.
홍 회장이 '불가리스' 파문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쇄신에 나섰지만, 소비자 불매운동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남양유업은 국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홍원식 전 회장 지분 51.68% 등 오너일가 지분 전체(53.08%)를 3107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남양유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기업의 가치를 재무적 성과로만 판단하지 않는 분위기다.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을 비롯한 비재무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겨진다. 특히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의 경우 책임·윤리경영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다.
실례로 삼양식품의 경우 ESG경영 행보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앞서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총괄사장은 앞서 회삿돈 49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월 대법원으로부터 각각 징역 3년형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김 총괄사장은 이후 지난해 10월 법무부 취업승인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한 뒤 ESG위원장직에 올라 준법경영을 위한 사내 감시조직 '컴플라이언스팀'을 신설했다.
ESG 강화 분위기는 남성중심의 보수적인 식품업계의 이사회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 임원 선임이 지배구조 개선에도 주요지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우존스지속가능성지수(DJSI),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 국내외 주요 ESG 평가기관은 이사회 다양성 확대를 중요한 기준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도 여성 임원 진출에 힘을 싣고 있다.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은 이사회 내 이사 선임 과정에서 특정 성별로의 쏠림현상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마친 CJ제일제당과 농심이 각각 첫 여성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삼양식품은 사외이사 4명 중 1명을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풀무원도 사외이사 8명 중 3명이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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