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석(37)은 인터뷰 내내 ‘시작’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반복했다. 데뷔 17년째지만 스크린에 모습을 보인 건 14년 만이다. 장진 감독의 신작 ‘퀴즈왕’(16일 개봉)을 제2의 데뷔작으로 삼은 그가 새로운 연기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14년만에 스크린 나들이
‘퀴즈왕’은 우연히 다섯 무리의 사람들이 경찰서에 모여 방송 이래 한 번도 30번째 문제 정답자가 나오지 않은 퀴즈쇼에 133억원의 상금을 타기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단순하고 도발적인 성격의 흥신소 직원 상길 역을 맡았어요. 김수로 선배가 연기한 도엽의 파트너로 떼인 돈을 받으러 다니는 인물인데, 나름대로 책을 좋아하는 엘리트예요. 우울한 사람들이 상금을 위해 공부하고 점점 바뀌어가는 여정을 그린 웃기면서도 따뜻한 영화죠.”
장진 감독과의 사적인 친분이 영화 출연으로 이어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도시인 연기를 주로 해왔는데 감독님은 실제 제 모습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아신거죠. 남을 웃기는 재주는 많지 않지만 정말 웃음이 많거든요. 힘 빼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연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연기 매뉴얼을 늘려야 할 때고 그래야 큰 배우로 올라설 수 있다는 감독의 말에 공감했다.
“평소에 편한 형이기만 한 감독님이 그 정도 재능을 지닌 분인지 몰랐어요. 직접 시범을 보이는데 연기도 정말 잘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연기가 참 작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어요. 무게를 더는 연습을 늘 시키셨고, 그렇게 상황 속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어 내게 됐어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김수로와의 호흡에 대해서도 “처음 같이 연기를 해봤는데 서로 하이와 로우로 번갈아 톤을 맡으며 호흡이 잘 맞았다”고 했다.
“관객이 어떻게 볼지 두려움도 있지만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자신해요. 예전에는 제가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신경 썼지만 얼마나 편하게 보는 사람들이 흡수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 됐죠.”
)연기 갈증 풀고 결혼
20대 초반 원조 꽃미남으로 주목받으며 데뷔 직후부터 인기 고공행진은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병역 비리에 휘말렸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6년의 공백이 생겼다. 이때가 한국 영화계 최고 부흥기였고, 동료들이 스크린을 누비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봐야만 했다.
“형, 동생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했다”고는 했지만 수없이 마음 다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가슴앓이가 심했어요. 후회가 컸고 반성도 많이 했죠. 지금은 마음이 편해졌어요. 무엇보다 자기 일에 대한 소중함과 갈증을 느끼는 계기가 됐어요.”
내실을 다지고 3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승부를 펼치겠다는 다짐을 이룰 때라는 그는 “이제 시작이다. 누아르, 액션, 진한 멜로, 악역 등 뭐든지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결혼도 해야 하지 않으냐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외로움이 뭔지는 알지만 요즘은 정말 연기 생각밖에 없어요. 언젠가 가정도 이뤄야겠지만 연기 목마름을 씻어내는 게 먼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