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거주 중인 민병희(36세, 가명) 씨는 요즘 한창 라인댄스 삼매경에 빠졌다.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에서 무료로 배우다 보니 굳이 멀리 있는 댄스학원까지 가는 불편을 겪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 없이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강사가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 친목을 도모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소통 단절'의 대명사로 불리던 아파트가 변하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공간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이웃끼리 서로 돕고 정을 나누는 새로운 주거문화의 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입주민끼리 재능기부를 통해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운영, 삶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건설사들도 공동체 생활이 활성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공간 마련에 힘쓰는 추세다.
◆주민간 소통 잘 이뤄질 수록 선호도 높아
1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곡 푸르지오'가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을 중심으로 소통의 장을 마련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아파트는 기존 컴퓨터실을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전용공간인 '푸르홀'로 꾸며 라인댄스교실, 푸르미 합창단, 클래식 기타 등 약 26개의 커뮤니티 활성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 중이다.
특히 이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있어 별도의 비용을 내고 외부 강사를 고용하는 게 아닌, 관련 재능을 가진 이웃들이 서로 선생님이 돼 무료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다. 참여율이 높은 것은 당연하고, 입주민끼리 서로 친구가 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상림마을 롯데캐슬1단지'도 이 같은 이유로 은평뉴타운 내 아파트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좋다. 현재 마을문고 운영회를 중심으로 평생공부방 운영, 문화체험 강좌, 아파트 주민소식지 만들기 등의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은평뉴타운 인근 H부동산 관계자는 "교통, 쾌적성, 교육 등 기본적으로 좋은 입지여건을 갖춘 데다, 문화 프로그램도 활성화돼 있다 보니 젊은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사·정부 '살기 좋은 아파트' 만들기 고심
공동체 프로그램에 대한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면서 건설사와 정부도 아파트를 짓기 전부터 소통하기 좋은 아파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 계획 단계서부터 이를 염두에 둔 설계를 선보이는 것은 이제 기본이다.
삼성물산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 '래미안 강동팰리스'에 여성가족부와 함께 공동육아나눔터를 조성키로 했다.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돌봄 기능을 보완하고 이웃간 품앗이가 가능하도록 단지 내 '키즈룸'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물산 측은 이와 관련해 장난감이나 도서구입 등의 기자재비 및 품앗이 소모임 지원비를 1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대우건설과 동부건설이 경기도 김포시 풍무2지구 도시개발사업구역에 분양한 '김포 풍무 푸르지오 센트레빌'은 스포츠·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입주민이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에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를 위해 시행사가 시설관리비를 제외한 커뮤니티 운영자금 2억원을 1년간 지원한다.
또 EG건설은 부산 정관신도시 A5블록 '정관신도시3차 EG the1'에 교원자격증을 가진 입주민을 모집, 이들이 주중에 단지 내 학생들에게 주요 과목을 지도하도록 했다. 입주민 자녀들의 성적향상뿐 아니라 자기계발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복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집이라는 본질은 '재산'보다는 '생활공간'이자 '자아실현'의 공간"이라며 "입주민의 만족도가 아파트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볼 때 주민간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된 아파트일수록 향후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