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입찰담합 적발에 따른 잇단 과징금 부과로 휘청이는 모습이다. 몇 년간 불황에 시달리다 이제야 겨우 실적 좀 개선되나 했더니, 돈 벌어 과징금만 낸다는 자조 섞인 푸념도 흘러나오고 있다.
건설사들은 담합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담합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헤아려 달라는 입장이다. 입찰제도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감안하지 않은 채 건설사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호남고속철도 과징금 4355억원, 역대 두 번째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입찰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된 건설사들의 과징금 규모는 총 7493억원에 이른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과징금이 4355억원으로 가장 많고 ▲인천도시철도 2호선(1323억원) ▲경인운하(991억원) ▲대구도시철도 3호선(402억원)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구간(122억원) ▲공촌하수처리장·광주전남 수질센터(121억원) 순이다.
이 가운데 호남고속철도 담합 건으로 부과된 4355억원은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역대 과장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전체 과징금 중에서도 지난 2010년 6개 LPG 공급회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과징금 악몽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공정위는 4대강 2차 턴키공사 및 천연가스 주배관 건설공사 등에 대해서도 입찰 담합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담합에 따른 발주기관의 손해배상청구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 삼성물산, 포스코건설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건설사들은 지난해 전년 대비 급감한 영업이익을 내거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 들어 실적이 개선되고는 있다지만 과징금 내고 나면 남는 돈도 없는 셈이다.
◆담합 조장하는 입찰제도, 정부 공동책임론 제기
건설업계에서는 과징금 폭탄보다 담합을 조장했던 정부가 이제와 나 몰라라 한다는 점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담합이 사라지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담합에 대한 잘못을 부정하지도, 처벌을 피할 생각도 없다"면서도 다만 "공사 수행력을 가진 건설사가 한정된 가운데 여러 공구를 동시에 발주하면서 한 공구에만 입찰을 하라는 것은 담합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임기 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밀어붙이기 식의 발주가 이뤄지다 보니 건설사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경쟁입찰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현실적으로 여러 공구에 입찰할 수가 없어 담합의 유혹을 느꼈고, 실제 담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건설경영협회 관계자는 "지금 담합으로 적발된 사업들은 모두 5~6년 전에 발주된 대형 국책사업들인데, 당시 정부에서 업체간 조율이 있었을 가능성에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유도한 측면도 있다"며 "공범이면서 건설사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쟁 국가에서 담합 적발과 관련해 흑색선전을 하는 등 해외건설 수주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의 책임은 모두 지되, 일괄조사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담합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대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구성된 데다 해외 건설사들의 진출까지 사실상 막고 있어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또 "정부에서 건설사들이 담합에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조성해줬으며, 담합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철저히 감시를 안했다"며 "정치사회, 관료사회에서 로비나 뇌물 등에 흔들리지 않고 구조적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