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무'의 선장으로 돌아온 김윤석
온전히 스토리·캐릭터 매료된 작품
선원 지키는 아버지 같은 인물 변신
'해무'는 문학·영상 둘 다 담은 영화
인간의 마음은 짙은 안개와도 같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처럼 인간의 내면을 아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해무'(감독 심성보)는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성을 파고드는 드라마가 인상적인 영화다. 배우 김윤석(46)은 주인공 철주 역을 맡아 사람에 대한 이 내밀한 드라마에 깊이를 더했다.
'해무'는 만선의 꿈을 안고 배에 오른 6명의 선원들이 짙은 해무 속에서 밀항자들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지난 2001년에 일어난 제7호 태창호 사건을 극단 연우무대가 동명의 연극으로 올렸고, '살인의 추억'의 각본가 출신 심성보 감독이 이를 스크린에 옮겼다.
김윤석이 연기한 철주는 극중 선원들을 가족처럼 챙기는 선장이다. 이야기가 가진 힘, 곧 드라마를 작품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는 그에게 '해무'는 "온전히 스토리와 캐릭터만으로 끌고 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심성보 감독은 '해무'의 시간적인 배경을 IMF 경제 위기가 닥친 이듬해인 1998년으로 삼았다. 시대에 의해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해무'의 중요한 테마다. 김윤석도 시나리오에서 처음 철주를 만났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구걸하러 다니는 흥부"였다. 그런 철주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선원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감정이 가장 중요했다.
"철주는 참 안쓰럽고 슬픈 인물이에요. 뭍에 내려서도 갈 집이 없으니까요. 심지어 선원들도 밤이 되면 다시 배로 돌아와요. 시대에 내몰린 사람들인 거죠. 철주는 이들을 지키려는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김윤석은 매 작품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줄 아는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는 뱃사람이 되기 위해 크고 작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다큐멘터리를 참고했고 직접 선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뱃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체중 증량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존 전라도 사투리와는 또 다른 여수 사투리 연기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과의 작업은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 됐다.
영화 속 철주는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선원들에게 각자 맡은 일을 시키며 묵묵히 배를 몰 뿐이다. 그러나 선장으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철주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행동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무겁고 어둡게 다가올 수 있는 행동이지만 김윤석은 이를 "말도 안 되는 행동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철주를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로 보면 안 돼요. 우리도 철주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할 걸요? 철주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아야 우리 영화는 더욱 흥미로울 거예요."
김윤석은 "'설국열차'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해무'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문학과 영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해무'를 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블록버스터만으로 포장하기에는 알찬 내용이 정말 많아요. 캐릭터도 풍성하고요. 배에 대한 철주의 집착, 동식과 홍배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영화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니까요."
데뷔 이후 김윤석은 매년 쉬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올해는 '해무'에 이어 '타짜-신의 손'의 개봉을 앞두고 있고, '쎄시봉'과 '극비수사'(가제)까지 촬영하며 유난히 더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김윤석은 "의도치 않게 이렇게 작품을 하게 됐다. 올 가을까지는 영화 촬영으로 바쁘게 보낼 것 같다"며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이토록 지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연기가 재밌다"는 빤하지만 당연한 말이었다. '해무' 속 묵묵히 배를 몰던 철주처럼 김윤석 또한 삶의 전부와 다름없는 연기만을 생각하며 쉼 없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사진/한준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