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이미지와 다른 코믹한 변신
힘 뺀 연기 고민 속 초심 의미 깨우쳐
스타의 자질보다는 배우의 덕목
김남길(33)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비담을 떠올리게 된다. 섬세한 선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적인 강인함은 김남길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다. 그런 김남길이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감독 이석훈)에서 코믹하고 엉뚱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유쾌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온 새로운 변신이다.
6일 개봉하는 '해적'은 조선의 국새를 삼켜버린 고래를 둘러싸고 해적과 산적, 개국 세력이 벌어지는 갈등과 모험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 영화다. 김남길은 고려 무사 출신으로 산적단 두목이 된 장사정을 연기했다. 산적들 두목다운 충직함과 카리스마를 지녔으나 제대로 된 도적질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허당스러운' 인물. 김남길에게 '해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었다.
"다른 것보다 비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드라마 '상어'를 하면서 느낀 연기적인 실패로 조금은 힘을 빼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었거든요. 시나리오 속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좋은 오락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선택했어요."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사정은 그 동안 김남길이 연기한 인물들 중 가장 밝고 유쾌한 인물이다. 때로는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밝은 톤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도적질이 계획에서 틀어지자 당황한 나머지 가장 먼저 줄행랑을 치고, 해적단 두목 여월(손예진)에게 능청스러운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장사정은 김남길이 지닌 코믹함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과거 갈등을 겪었던 모흥갑(김태우)과 마주할 때는 무사 출신의 진지함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김남길은 유쾌함과 카리스마의 균형을 맞추며 연기에 임했다.
그러나 힘을 빼고 연기하는 것이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스크린 속 장사정의 유쾌함의 이면에는 연기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숨어 있다.
"이전에는 연기할 때 늘 자신감이 있었어요. 부족한 점은 고치면 된다는 자신감이었죠. 그런데 '해적'을 하면서는 성격상 밝은 것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자꾸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난생 처음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나랑 잘 안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유해진, 이경영 등 선배 배우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김남길은 자신이 마주한 연기의 벽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했다. 마침내 찾아낸 해답은 "초심을 찾을 것"과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이었다.
"하루는 방을 치우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순수하게 연기만 생각하고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행복이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작품이 들어오면 한다는 무미건조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무언가 깨우쳐졌어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됐죠."
'해적'으로 얻은 연기의 깨달음은 현재 촬영 중인 '무뢰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뢰한'에서는 심각한 감정을 힘들이지 않고 표현하는 또 다른 연기 방식을 터득해가는 중이다. 전도연과 호흡을 맞추면서 얻는 경험들도 배우로서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김남길은 스스로를 "배우의 덕목은 가지고 있을지언정 스타로서의 자질은 없다"고 평가했다. 그것은 겸손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린 판단이다. 그는 오랜 무명시절을 지나 서서히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도 순간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며 배우로서의 건강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얼굴이 많이 알려진 배우가 연기력이 상승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그건 자꾸 숨으려고 해서인 것 같아요. 연기를 위해서는 더 많은 경험도 하고 대중들과 교류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거죠. 저는 대중들 안에 섞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 연기할 거예요."
사진/한준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