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바라는 대중의 욕망 상이한 방식으로 풀어내
올 여름 극장가는 국내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대작 경쟁으로 유난히 뜨거웠다.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를 시작으로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해무' 등이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면서 한국영화계는 오랜만에 활기를 띄고 있다. 흥행 성적표만 놓고 보면 여름 극장가의 주인공은 단연 '명량'이다. 개봉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모은 '명량'은 '아바타'의 기록(1326만)을 깨고 역대 흥행 1위에 올라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 편의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의 욕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영화가 흥행에서도 늘 우위를 점한다. '군도'가 생각만큼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민란의 시대'라는 부제에서 기대했던 혁명과 반동의 카타르시스를 영화가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명량'은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바라고 있는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뛰어든다. 330척이라는 왜선의 압도적인 기세에 맞서 홀로 싸우는 이순신의 희생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회오리바다에 휘말려 침몰하는 대장선을 끌어내는 민초들의 모습, 그리고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는 것이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대사도 영웅과도 같은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해무'에도 '명량'과 마찬가지로 침몰하는 배가 등장한다. 선장인 철주를 비롯한 선원들에게 '해무'의 전진호는 삶의 터전과도 같다. 그러나 '명량'의 이순신이 희생적인 리더십과 민초들의 도움으로 침몰의 위기를 이겨낸 것과 달리, '해무' 속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은 침몰하는 배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무'는 사람들이 영웅을 바라는 바람은 현실 속에서 그저 욕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낱낱이 보여준다.
'명량'이 대중의 욕망을 스펙터클한 감동으로 풀어냈다면 '해무'는 대중의 욕망을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극과 극의 방식으로 담아낸 영화들이다. 흥행 성적과 별개로 이토록 상이한 성격의 영화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올 여름 극장가는 흥미롭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