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현 삼성엔지니어링 홍보팀 대리
빠름이 미덕이고, 효율과 능률만이 강조되는 시대다. 하지만 인생에까지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김제현 대리도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저의 이력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라고 의아해해요. 기껏 기술사 자격증 따놓고 전혀 관계도 없는 홍보팀에는 왜 지원했냐는 거죠. 간혹 안타까운 마음에 미친 것 아니냐는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전 이 선택에 매우 만족합니다."
◆만 29세, 건축분야 최고 기술사 되다
올해 3월 홍보팀 막내로 들어온 김제현 대리는 직전까지도 바레인의 무하락 하수처리시설 건축설계를 담당했던 프로젝트 리더였다. 특히 지난 2010년에는 건축기공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회사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터였다.
건축시공기술사는 건축기사 취득 후 관련 경력이 6년 이상이 돼야 치를 수 있는 시험이다. 건축분야의 최고 기술자로서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우대사항만도 128개에 이른다. 지난 1977년 도입된 이래 작년까지 1차 평균 합격률이 9.1%에 불과해 고시와 곧잘 비교되기도 한다.
김 대리는 이처럼 자격요건부터 시험 난이도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건축시공기술사를 만 29세에 합격했다. 관련 경력이 6년이 되자마자 곧장 시험 준비를 시작, 그 해 바로 거둔 쾌거다. 당시 1차 합격률은 평균보다 낮은 7.9%였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기 위해, 또 제 스스로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 기술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다행히 학군사관(ROTC) 공병으로 있으면서 공사감독을 한 경력이 있어 2006년 7월 입사한 뒤 4년 만인 2010년 8월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경력을 채우고, 첫 응시에서 합격까지. 그의 얘기만 듣자면 모든 과정이 순조로워 보인다. 그러나 김 대리는 건축공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때부터 계획하고 간절하게 바랐던 일이 2010년에야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건축에 대한 꿈을 갖고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2009년 미국공인프로젝트관리전문가(PMP)라는 자격증을 먼저 취득했어요. 이듬해 시험 자격이 됐을 때는 집근처 독서실을 다니면서 1000시간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요.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진정성과 열정 가진 홍보맨 되고 싶어
김 대리는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을 딴 뒤 대리로서는 드물게 프로젝트 리더라는 직책을 갖게 됐다. 소위 잘 나가는 직원이 된 셈이다. 그런 그가 현장 기술직과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의 홍보팀을 지원하자 주변 사람 모두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 한 명 한 명 회사를 대표해서 일하고 있고, 기술사인 저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장직원만 회사의 얼굴은 아니잖아요.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업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홍보팀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지원했죠."
업무의 연관성은 떨어져 보이지만 결국 목적은 하나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오히려 실무를 겸비한 홍보맨인 만큼, 보다 효과적으로 회사와 프로젝트를 알릴 수 있다는 점은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현장 경험이 없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아무래도 기술사로서 리더십과 실무경험을 쌓은 게 있다 보니 남들에게 어려운 용어나 기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이 같은 경쟁력을 갖췄다고 홍보업무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다. 현장 경험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공대생의 마인드로 살아온 그에게 정답이 없는 홍보영역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공대에는 공식이란 게 있잖아요.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값을 넣을지 구하기만 하면 되는데, 홍보는 공식이나 매뉴얼이 없다 보니 예측할 수가 없는 거죠. 더군다나 책으로도 배울 수 없다 보니 더욱 어려운데요. 선배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는 말한다. 기술사가 홍보를 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효율적이지 않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도 있는 거라고.
"대학교때 2급 교원자격증도 땄어요. 당시 공고에 한 달 동안 교생실습을 나갔는데, 그 역시 지금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언제 또 그런 소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겠어요. 홍보팀에 와서 제가 설계했던 바레인 무하락 하수처리시설 보도자료를 썼던 날의 그 짜릿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 그 마음을 간직하고 진정성과 열정을 가진 홍보맨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