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흥행 메이커 이안나 프로듀서
'취화선' 제작부로 영화판 뛰어들어
'과속스캔들' '써니' 기대 이상 흥행
'타짜2'로 색깔 있는 프로듀서 고민
"프로듀서요? 간단하게 말하면 감독의 매니저라고 할까요? 감독이 영화 연출의 책임을 진다면 프로듀서는 예산과 스케줄, 배우 등 영화 제작의 전반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처음과 끝을 모두 알 수 있는 직업이죠."
이안나(34) 프로듀서는 지난 2008년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동기인 강형철 감독과 함께 한 영화 '과속스캔들'로 충무로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영화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상황에서 전국 824만 관객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3년 뒤 선보인 '써니'는 80년대 복고 신드롬을 일으키며 736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달 3일 개봉한 '타짜-신의 손'도 지난달 30일까지 누적 관객수 388만 명을 모아 올해 개봉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들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 '취화선'을 시작으로 흥행 프로듀서가 되기까지
충무로의 떠오르는 제작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대학에서 영화영상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영화보다는 광고 쪽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대학 2학년 때 단편영화를 연출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안나 프로듀서는 3학년에 올라간 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에서 제작부로 영화판에 뛰어들면서 제작자로서의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많은 촬영현장에서 정신없이 일했어요. 어리다고 예뻐해 주시니까 이 일을 잘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무엇보다 제작부만 직함이 있는데 그게 달라질 때마다 생기는 재미가 쏠쏠했어요(웃음). 제작비나 개런티 같은 남들이 궁금해 하는 걸 알 수 있다는 점도 호기심 많은 성격과 잘 맞았고요."
이후 이안나 프로듀서는 '폰'으로 안병기 감독과 인연을 맺은 뒤 제작부장과 제작실장, 라인 프로듀서 등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영화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프로듀서 직함을 달고 처음 제작한 영화 '과속스캔들'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충무로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어진 '써니'의 흥행으로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갈 제작자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영화 제작부는 유난히 힘든 파트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해야 하는 파트이기 때문이다. 제작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듀서가 될지라도 영화 제작의 전반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안나 프로듀서는 "감독으로서 연출을 잘 했을 때의 성취감도 있겠지만 제작자로서 아무도 못할 것 같은 일을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도 대단하다"며 자긍심을 드러냈다. 물론 자신이 해낸 일이 때로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는 "감독은 집중력과 고집이 필요한 직업이라면 프로듀서는 저처럼 호기심과 오지랖의 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를 하는 후배들이 제작부를 기피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도 드러냈다. 이안나 프로듀서는 "많은 후배들이 자기 작품으로 데뷔해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험 부족이라는 딜레마가 생긴다. 좋은 파트너를 제작자로 만나야 하고 경험 있는 스태프들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은 무엇이든 묵묵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을 만날 때에도 경험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 '타짜-신의 손'이 남긴 새로운 경험과 고민
최근 개봉한 '타짜-신의 손'은 이안나 프로듀서에게 새로운 경험과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줬다. 만화 원작의 기획이라는 점, 그리고 안병기 감독이 대표로 있는 토일렛픽쳐스를 떠나 만든 첫 영화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와의 비교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아예 색깔이 다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제작자로서 책임감이 커지다 보니 절친한 강형철 감독과 일과 관련한 문제로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완성된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2012년부터 준비해온 영화가 마침내 개봉해 관객들과 만난 지금, 이안나 프로듀서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과속스캔들'과 '써니'를 할 때는 언제라도 영화판을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운 마음이 있었어요(웃음). 미련을 두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타짜-신의 손'을 마친 지금은 이안나라는 프로듀서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할 것도 배울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고요. 마음은 여유로워졌지만 책임감은 더 커져가는 것 같아요."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한 이안나 프로듀서는 다음 행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강형철 감독 같은 신인 감독을 발굴해 "다들 안 된다고 할 때 되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감독은 연출에 대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작품을 많이 못하는 이유 중 하나죠(웃음)."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하고 싶지만 하나의 지향점을 꼽는다면 휴먼 드라마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야 말로 이안나 프로듀서가 지닌 강점일 것이다.
"다음 작품은 초심으로 돌아가 적은 예산의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톱스타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요. 강형철 감독과는 늘 각자 갈 길은 열려 있어요. 강형철 감독이 좋은 시나리오와 프로듀서를 만나거나 제가 좋은 감독을 만난다면 따로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강형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면 저와 같이 하지 않을까요? 최고의 파트너라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웃음)."
사진/김상곤(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