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 팀 버튼의 '가위손',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샘 멘데스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장르도 감독의 색깔도 제각각인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는 미국 중산층의 삶이 지닌 허상을 다루고 있다는 유사점이 있다. 이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교외 지역의 평화로운 주택가는 겉과 속이 다른 미국적인 삶의 표상과도 같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 '나를 찾아줘'의 첫 장면 또한 교외 지역의 근사한 집의 풍경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주인공 닉(벤 에플렉)이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담은 오프닝은 중산층의 삶이 지닌 평온함을 잘 보여준다. '나를 찾아줘'는 이 평온한 중산층의 삶 뒤에 감춰진 균열과 불안을 그리는 영화다.
영화의 출발점은 스릴러다. 특별한 일 없는 삶을 살아가던 닉은 결혼 5주년이 되던 날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충격에 빠진다. 실종된 아내의 남편으로 여겨진 닉은 그러나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단서들을 통해 아내를 살해한 유일한 용의자로 몰린다. 영화는 에이미의 실종을 기점으로 현재의 이야기를 전하는 닉의 시점과 과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에이미의 시점을 교차시키는 흥미로운 전개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세븐' '파이트 클럽' '패닉룸' 등 스릴러에서 뛰어난 장르 세공술을 보여준 데이빗 핀처 감독은 '나를 찾아줘'에서도 변함없이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다. 많은 스릴러 영화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긴장감을 급격히 상실하는 것과 달리 '나를 찾아줘'는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중반부 이후에도 긴장감을 좀처럼 놓지 않는다. 닉을 연기하는 벤 에플렉의 신경쇠약에 빠질 것 같은 열연,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는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 '소셜 네트워크'부터 데이빗 핀처 감독과 함께하고 있는 뮤지션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음악도 영화를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든다.
스릴러로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현대 사회의 단면을 파헤치는 섬세한 드라마로 변신한다. 완벽하게 보였던 닉과 에이미의 관계의 실체, 그리고 에이미의 실종 사건을 자극적으로 취재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 등은 평온함을 가장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스릴러로만 영화를 바라본다면 결말에 등장하는 닉의 선택이 좀처럼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상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한 모습이라고 본다면 그 선택 또한 서늘한 공감으로 다가갈 것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10월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