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전셋값'이란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심각해진 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전세기간 연장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2년으로 돼 있는 전세 임대차 보호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을 인하하면 치솟는 전셋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전세가격 급등, 전세 물량 부족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부, 전세난 대책 마련 본격화
법무부는 주택 임대차 보호 강화를 위한 관련 용역을 발주하는 등 개선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연구용역의 일환으로 진행한 '월세 임차인 보호 강화 개정안 마련' 설문조사도 지난 17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지에는 ▲현행 2년으로 규정된 전세 임대차 보호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2년 이하 단기 임대차 계약에 대한 법적 보호 방안 ▲보증금 보호를 위한 집주인의 국세 체납 여부 확인 허용 방안 등이 포함됐다.
아울러 법무부는 전세시장 안정화를 위해 현행 10%인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월세 전환율이란 전세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전세에 비해 월세 부담이 높다는 의미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잇단 전·월세 대책에도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실제 전셋값이 25개월째 오르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 이상인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경기도 화성·수원 일대 소형아파트는 전세가가 매매가와 맞먹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권 전세대출이 월 1조원을 돌파하고, 전세대출 총액도 최근 5년간 3배 이상 급증한 32조8000여억 원에 이르는 실정이다. 또 전세값에서 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23%를 넘어서면서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금리 시대, 기간 연장 실효성 의문
전세 임대차 기간이 연장되면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중·고등학교 과정이 3년이기 때문에 임대기간 3년을 보장하는 게 임차인들에게는 유리하다"며 "주거안정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함영진 부동산114 본부장은 "집주인들이 어차피 3년 동안 전세금도 못 올리는데 한 번에 올려야겠다 생각하지 않겠냐"며 "이미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선 상황에서 전세금이 높아지면 보증금 반환 리스크만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전세물건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신혼집 전세계약을 맺은 한대만(37) 씨는 "3년으로 연장된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다음에는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하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아직 전세계약을 맺은 뒤 2개월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재계약이 걱정된다"고 푸념했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금리가 낮아 자금 운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집주인 입장에서는 3년간 전세를 유지한다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오히려 싼 값에 돈을 빌려 보증금을 돌려준 뒤 월세로 전환하는 게 수익성 측면에서는 낫다"고 설명했다.
임 위원은 또 "월세로의 전환은 하나의 흐름인 만큼, 역행하기가 어렵다"며 "이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전세를 유지하는 임대인들에게 양도소득세나 상속·증여세 등을 감면해 주는 등의 유인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