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 받았던 것은 스토리텔링의 힘 때문이었다. 강풀, 윤태호 작가처럼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웹툰들이 가장 먼저 영화로 제작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웹툰의 영화화는 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관객의 관심은 '원작과의 싱크로율'에 있었고 그것이 웹툰 원작 영화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점에서 작가 기안84의 웹툰 '패션왕'의 영화화 소식은 의외였다. 앞서 영화화된 웹툰들이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반면 '패션왕'은 소위 말하는 '병맛' 코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다. 엉뚱한 캐릭터와 말도 안 되는 유머만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이 웹툰을 어떻게 영화화할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선물' '작업의 정석' '이별계약' 등 주로 멜로영화를 만들어온 오기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주원이 주인공 우기명 역을 맡았으며 안재현, 설리, 박세영 등 젊은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 우기명이 '간지(멋이라는 뜻의 유행어)'를 통해 패션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전반부는 웹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곳곳에 녹아든 병맛 코드가 눈에 띈다. 특히 학교에서 펼쳐지는 학생들의 각양각색 패션 대결은 원작 못지않은 웃음을 선사한다. 우기명의 라이벌인 김원호(안재현)가 '간지폭풍'을 맞으며 하늘을 나는 장면은 원작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는 모델 선발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는 후반부부터 원작과 다른 길을 걷는다. 원작 팬이라면 궁금해 할 늑대인간 변신과 같은 극한의 '병맛' 코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왕따와 이지메를 겪던 우기명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원작 특유의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왕따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와 어색하게 섞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패션왕'이 원작의 병맛 코드를 살리면서도 원작에 없던 감동을 넣은 것은 상업적으로 안정적인 길을 가고자 하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선택이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흐트러뜨린다. 의미보다는 피상적인 웃음 자체에 집중하는 병맛 코드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감동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요 타깃층인 10대 관객에게 지나치게 교훈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15세 이상 관람가. 11월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