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영화는 시련과 아픔을 견뎌내고 한 걸음 성장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장르다. 누구나 한번쯤 겪을 성장통을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가슴 찡하게 담아냄으로써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영화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난히 이런 성장영화를 만나기 힘들다. 10대들로 하여금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보다 '어떤 대학을 갈 것인가'를 더 고민하게 만드는 한국사회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 '파수꾼' '잉투기' 등의 영화들이 성장통 보다 성장을 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을 그리는데 집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김태용 감독('만추'의 김태용 감독과는 동명이인)의 첫 장편영화 '거인'은 이들 영화와 마찬가지로 10대의 성장을 묵직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어른이 채 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인 열일곱 살 영재(최우식)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영재는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소년이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큰 아픔이 있다. 무능력한 아빠, 아무런 힘이 못 돼주는 엄마,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것은 형뿐인 동생까지 모든 것이 영재에게는 부담일 뿐이다. 집에서 더 이상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 영재는 집을 나와 아동 보호시설인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시설에서도 나가야만 하는 나이가 되면서 영재는 다시 한 번 절망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영재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카메라다. 핸드헬드와 클로즈업 등 사실적인 연출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재의 답답하고 무거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든다. 김태용 감독이 처음으로 영화의 꿈을 가진 계기가 된 다르덴 형제의 영향이 엿보인다. 스크린에서 첫 주연을 맡은 최우식 또한 복잡한 내면의 감정들을 절제된 폭발로 그려내면서 관객에게 무거운 먹먹함을 전한다.
누군가는 '거인'을 보며 믿기 힘든 현실이라며 혀를 내두를지 모른다. 이 무거움과 답답함이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용 감독은 '거인'에 대해 "서른이 되기 전 영화를 통해 유년시절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극복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영재처럼 실제로 보호시설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김태용 감독은 '거인'을 통해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은밀한 감정까지 가감 없이 담았다. '거인'이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 무거움을 잠깐이라도 함께 나누길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 12세 이상 관람가. 11월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