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십세기폭스코리아
모세의 삶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출생의 비밀, 그리고 신의 계시를 받아 민족의 지도자로 거듭나는 운명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겪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다를 반으로 갈랐다는 홍해의 기적과 '십계'의 전설까지 있으니 영화화 소재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할리우드는 이미 여러 차례 모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세실 B. 드밀 감독이 1923년과 1956년 두 번에 걸쳐 연출한 '십계', 그리고 1998년 드림웍스가 만든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모세의 영웅적인 면모와 종교적인 메시지를 함께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 감독은 모세의 영웅담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가 연출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하 '엑소더스')은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작품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친숙한 크리스찬 베일이 극중 주인공인 모세스를 연기했다.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속 모세스는 점괘 같은 것은 믿지 않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이집트 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장군이자 왕권을 물려받을 람세스(조엘 에저튼)와 사촌 지간인 그는 출생의 비밀을 안 뒤에도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에 빠진다. 영화는 신의 계시 앞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면서도 결국 히브리인의 지도자로 나서는 모세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스펙터클의 향연이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익스트림 롱 쇼트(아주 멀리서 넓은 지역을 묘사하는 촬영기법)로 담아낸 화면은 대서사극다운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이집트를 뒤엎는 10가지 재앙이 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물이 빠진 홍해에서 펼쳐지는 모세스와 람세스의 마지막 대결은 장엄한 느낌까지 준다. 슈퍼히어로 배트맨을 인간적인 인물로 만들어냈던 크리스찬 베일이 수염과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로 인간적인 모세스를 그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다만 '신들과 왕들'이라는 부제에서 기대하게 되는 모세스와 람세스의 대결이 예상만큼 극적인 감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신이 되고 싶었던 인간과 신의 대리자가 되기를 거부하려는 인간의 대결은 조금 평이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없지 않다.
오히려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 후반부의 모세스와 여호수아의 대화에 있다. 모세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다툼도 많아지는 법"이라며 "우리가 자유를 얻은 뒤에도 과연 그럴까?"라며 '꿀과 우유가 흐르는' 고향인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을 되찾으려는 자신들의 행동에 의문을 던진다. 먼 미래에 펼쳐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암시하는 이 짧은 신은 '엑소더스'가 지닌 가장 정직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