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 감독이 '이터널 선샤인'을 발표한지 어느 덧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터널 선샤인'을 언급해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10년 동안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이를 독특한 영상으로 구현하는 능력만큼은 미셸 공드리 감독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스타일이 제대로 된 이야기와 만난다면 또 다른 '이터널 선샤인'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아직까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가 궁금한 이유다.
'무드 인디고'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다. 프랑스 소설가 보리스 비앙이 1947년에 출간한 '세월의 거품'을 스크린에 옮겼다. 칵테일을 만드는 피아노를 만들어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번 엉뚱한 발명가 콜랭(로망 뒤리스)이 사랑스러운 여인 클로에(오드리 토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그리고 결혼 이후 겪게 되는 아픔과 상처를 그리고 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세월의 거품'에 대해 "영상 작업에 있어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소설"이라고 밝혔다. 그 말처럼 영화는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스타일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말하는 생쥐, 바퀴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초인종, 구불구불한 곡면으로 이뤄진 식탁, 그리고 거품 모양의 놀이기구까지 미셸 공드리 감독다운 소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한다. 그만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날로그의 감성을 지닌 소품들과 장면들이 무척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색의 변화도 '무드 인디고'의 특징 중 하나다. 한없이 달콤하게 시작하지만 차가운 아픔으로 끝나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영화는 색의 변화로 표현하고 있다. 비비드와 파스텔 톤에서 시작해 모노 톤을 지나 무채색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사랑의 행복과 아픔을 한번쯤 겪어본 이라면 영화가 그려내는 감정의 변화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드 인디고'가 '이터널 선샤인'에 버금가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대표작이 될지는 의문이다. 촘촘한 이야기로 사랑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었던 '이터널 선샤인'에 비해 '무드 인디고'는 사랑의 시작과 끝을 도식적으로 풀어낸 로맨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무드 인디고'로 자신이 변함없는 비주얼 스타일리스트임을 증명해 보인다. 동시에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부족함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와 스타일, 둘 중 무엇을 중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무드 인디고'에 대한 평가는 나뉠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