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대중들이 좋아할 영화를 만드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 제 아무리 톱스타를 기용하고 볼거리와 재미를 갖췄다 할지라도 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윤제균(45) 감독은 '흥행의 귀재'라 부를 만하다. 그의 영화는 투박하지만 그 속에는 마음이 움직일 법한 구석들이 하나쯤은 녹아 있다. 섹시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알고 보면 순정 넘치는 로맨스였던 '색즉시공',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벌어지는 휴먼 코미디 '1번가의 기적', 그리고 재난을 겪으면서 더욱 끈끈해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인 '해운대'까지 그의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화법으로 흥행에 성공해왔다.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6·25를 시작으로 1980년대 초반 이산가족상봉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몸소 겪은 주인공 덕수(황정민)를 통해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삶을 그리는 영화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의 이름을 건 만큼 진짜 잘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과 의무감과 큰 영화였다"고 말했다.
◆ '해운대'로 1000만 감독이 된 첫 영화다. 흥행 부담은 크지 않나?
- 사실 '1000만 감독'이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그렇게 기대할수록 부담은 커진다. 중요한 건 관객들의 판단이다. 그게 더 긴장되고 부담된다.
◆ '해운대' 이후 처음 밝힌 차기작은 글로벌 프로젝트였던 '템플 스테이'였다. '국제시장'을 먼저 준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 '해운대'를 마친 뒤 '템플 스테이'와 '국제시장'을 함께 준비했다. 처음에는 '템플 스테이'의 제작 진행 속도가 빨랐다. 그런데 글로벌 프로젝트다 보니 진행 속도가 점점 더뎌졌다. 그러던 중 2012년 가을에 '국제시장'의 초고가 나왔다. 어떤 작품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국제시장'을 먼저 하게 됐다. '국제시장'은 오래 전부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 주인공인 덕수와 영자가 실제 부모님의 이름이라고 언론시사회에서 뒤늦게 밝혔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영화에도 많이 반영됐나?
- 부모님의 에피소드가 들어간 건 아니다. 다만 캐릭터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빌려왔다. 덕수처럼 내 아버지도 조금은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다. 그런데 친척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혈기왕성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하더라. 6·25 때 피란 과정 등은 픽션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남 창령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가 6·25 때 실제로 동생을 잃은 건 사실이다.
◆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
-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사건을 꼽는 게 힘들었다. 몇 가지를 고른 다음 그것을 엮는 과정에서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 황정민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덕수라고 생각했다. 영자는 김윤진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분량 때문에 부탁하는 게 실례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흔쾌히 작업에 참여해줘 감사했다. 다른 배우들도 분량은 많지 않아도 관객 뇌리에 박힐 장면이 하나쯤은 만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김슬기 같은 경우는 'SNL 코리아' 때부터 눈여겨 봤다.
◆ 덕수와 영자의 집이 예쁘다.
- 부산 남부민동에 있는 집이다. 국제시장 뒤쪽에 있다. 바다도 보이고 용두산 공원도 보이면서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까지 보이는 곳을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 달구(오달수)가 남포동에 있는 극장 대영시네마의 대표로 등장하는 게 재미있다.
- 부산에서 그만큼 의미 있는 극장이다. 촬영하면서 대영시네마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촬영했다. 다만 영화에서 달구가 베트남 여자와 결혼한 건 사실이 아닌 픽션이다. 혹시라도 사장님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 전반적으로 롱 테이크 기법이 많이 쓰였다.
- 이전 영화들이 3000~4000컷이었다면 이번에는 2400~2500컷 정도였다. 호흡을 빨리 가고 싶지 않아서 롱 테이크를 많이 쓰고 장면들도 '원 신 원 커트(하나의 신을 편집 없이 담는 것)'로 갔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하는 영화라서 진짜 잘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과 의무감이 컸다.
◆ 어른들 세대는 좋아할 영화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부모님 세대는 향수를 느낄 것이고 젊은 세대는 새로움을 느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인데 왜 정치·사회·역사적인 시선이 없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돌아가진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만든 영화다. 그래서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면 우리 영화의 미덕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영화를 어떻게 볼지는 관객의 선택이지만 말이다.
◆ 영화 후반부 덕수가 우는 모습과 즐거운 가족의 모습을 대비시킨 장면은 '국제시장'의 하이라이트다.
- 그 한 장면을 위해 '국제시장'을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제시장'을 시작할 때 처음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장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놓고 아버지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할아버지도 결국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장면에서 덕수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은 지금의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 아직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다만 '국제시장'이 잘 되면 80~90년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80~90년대 이야기도 있었다. 80~90년대를 살아가는 덕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다. 물론 배우들이나 투자사에는 이야기하지 않아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웃음)
사진/김민주(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