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배우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이현우(21)는 지난 2012년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통해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어 2013년에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해 김수현, 박기웅과 함께 여심(女心)을 사로잡았다. 스무 살을 갓 넘겼지만 여전히 소년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앳된 얼굴이 이현우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 가지 모습에만 머물 수 없는 배우에게 앳된 소년의 이미지는 언젠가는 지워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현우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마친 뒤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연기 변신보다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연기의 폭을 넓히는 방향을 선택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기술자들'(감독 김홍선)에서 천재 해커 종배를 연기한 것은 그런 고민의 결과였다. 영화는 인천 세관에 숨겨진 1500억 원을 40분 만에 훔치려는 범죄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현우는 종배 역을 맡아 김우빈, 고창석 등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 1년 반만의 영화다. 스크린에 돌아오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마친 뒤 어떤 작품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기술자들'의 종배였다. 약간 나빠 보이면서도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앳돼 보이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었던 건가?
- 그렇지는 않다. 다만 기존에 갖고 있는 모습에 다른 모습을 얹어가고 싶었다. 가령 종배도 영화를 보면 밝고 장난스러운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다. 그런 점에 끌렸다.
◆ 영화에서 종배는 '배신자'로 묘사된다.
- 종배에게 반전의 포인트가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많이 고민했다. 다만 완성된 영화를 본 뒤에는 종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내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 해커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나?
- 감독님이 만난 전문적인 해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실제 해커의 모습을 참고할 필요는 없었다. 해커는 프로그래밍으로 일하는 건데 그들처럼 똑같이 키보드를 친다고 해도 해커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종배의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다.
◆ 종배의 성격은 의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 내 나이 또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평소 즐겨 입고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보다 스타일리시하게 보여줄 부분이 많은 캐릭터라서 신경을 썼다.
◆ 김우빈, 고창석과의 작업은 어땠나?
- 고창석 선배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함께 작업해 친분이 있었다. 우빈이 형은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잠깐 출연했을 때 연락처를 교환해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아왔다. 의지할 수 있는 형들이 있어서 좋았다. 촬영 전 배우, 스태프들 모두 함께 간 MT에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금방 친해졌다.
◆ 조사장 역으로 나오는 김영철과는 일대일로 연기했다.
- 연기할 때 무거움이 있었다. 워낙 대선배님이라서 부담감도 컸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정말 잘 챙겨주셨다. 다른 작품에서 뵀을 때는 막연하게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놀랐다. 그런 의외의 모습에 반했다.
◆ 반전의 키를 지닌 인물이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그런데 오히려 종배가 지닌 반전을 관객은 물론 극중 인물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연기 자체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특정 장면이 어렵기보다 매 장면 비슷한 마음으로 열심히 찍었다.
◆ 이현우가 생각하는 종배는 어떤 인물인가?
- 박쥐같은 애다. 철저하게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다. (웃음)
◆ '기술자들'을 마친 뒤 '연평해전'을 촬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부터 연이어 남자들끼리만 영화를 찍고 있다. (웃음)
-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의도한 것도 아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재미를 느껴 선택하면 신기하게 다 남자들만 있더라. (웃음)
◆ 앳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결과는 아닐까?
-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멜로 영화나 따뜻한 로맨스도 하고 싶다. 남자들만 득실득실하게 나오는 영화도 해보고 싶다.
◆ 2014년은 '기술자들'과 '연평해전'까지 영화 촬영으로 바쁘게 보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연이은 영화 작업은 어떤 경험이 됐나?
- 많은 걸 느꼈고 배웠다.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배우로서 조금 더 성숙하고 깊이 있어졌다. 올해는 숨어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영화가 공개되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2015년에는 조금 더 소통하면 좋겠다.
◆ 새해 계획은 무엇인가?
- 일단은 '기술자들' 홍보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리고 차기작도 계속 지켜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 아직은 촬영장에서 막내지만 언젠가는 형들의 위치에 설 텐데.
- 형들의 위치에 서고 싶다는 바람은 있지만 걱정은 안 된다. 3~4년 뒤면 지금 우빈이 형의 위치가 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만큼 조급하거나 부담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 아역 시절부터 연기를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나?
-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재미있다.
◆ 연기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인가?
- 다른 배우들도 비슷할 것이다. 배우가 축복 받은 직업인 것은 여러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보지 못한 캐릭터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세상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다. 그게 가장 재미있다. 물론 연기는 독이 될 수도 있고 황금사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스스로 잘 조절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사진/김민주(라운드테이블) 디자인/최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