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별까지 7일'의 이시이 유야 감독./수키픽쳐스 제공
가족은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다. 늘 아무 일 없는 듯 함께 살아가지만 그 평온함은 때때로 진심을 숨겨야만 가능하다. 마음에 감춰둔 진심이 드러날 때 가족은 비로소 그 민낯을 나타낸다. 그것은 곧 이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이시이 유야(31) 감독의 7번째 장편 '이별까지 7일'(1월 15일 개봉)은 뇌종양 판정으로 죽음까지 1주일을 남겨둔 어머니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한 가족의 이야기지를 통해 버블경제 붕괴 이후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일본사회의 단면을 넌지시 바라보고 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는 작가 하야미 가즈마사의 자전적인 소설 '이별까지 7일(원제: 모래 위의 팡파르)'이 원작이다. 국내 개봉에 맞춰 지난 주말 내한한 이시이 유야 감독은 "학생 시절부터 가족이라는 테마로 영화를 만들어왔다"며 "그 동안 유사 가족의 이야기를 주로 그렸다면 이번에는 보다 진지하게 가족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평온하던 가족은 어머니의 뇌종양 판정과 함께 감춰둔 맨얼굴을 드러낸다. 버블경제를 바탕으로 쌓아온 평온함 뒤에는 자식들도 알지 못한 거대한 빚이 숨어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거대한 족쇄와도 같은 빚이다. 영화는 그럼에도 어머니를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두 아들과 그런 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다.
영화 속 두 형제는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장남인 코스케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에 잘 알려진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했다. 아직까지 청춘스타 이미지가 강한 그가 한 가족의 장남인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을 연기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30대를 넘어가면서 남자답게 변하고 있다. 그 '남자다움'은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철이 든 모습이다. 또한 무언가 열심히 해보려고 하면서 동시에 옅은 흔들림도 있다. 그런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코스케가 갑작스럽게 짊어진 책임감에 당황하면서도 무언가 하려고 하는 청춘이라면 이케마츠 소스케가 연기한 동생 슌페이는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인물이다.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형제가 갈등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마침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그러나 이시이 유야 감독은 코스케와 슌페이에 대해 "겉모습은 반대의 성향처럼 보일지라도 그 근본은 같다"고 설명했다. 뜻하지 않은 책임감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곧 지금 젊은 세대가 지닌 모습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에는 찌그러진 차가 한 대 등장한다. 아버지가 모는 토요타의 크라운이다. 버블경제의 '환희'를 맛봤던 지금 일본의 60대에게는 성공과 동경의 대상이 됐던 차다. 그런 크라운이 찌그러진채 달리는 모습은 과거의 환희가 끝나고 절망을 맞이하였음에도 어떻게든 달려가려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지금 한국 사회에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이시이 유야 감독은 "상처를 모른 척하면 차는 달릴 수 있다"며 "눈앞의 문제를 모른 척하면 된다는 것, 그것이 이들 가족이 직면한 현실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다.
"저는 정치가도 사회 기업가도 비즈니스맨도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법률을 만들거나 비즈니스를 잘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아요.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서 행복이 있지 않을까요?"
영화 '이별까지 7일'의 이시이 유야 감독./수키픽쳐스 제공
이시이 유야 감독은 지난 2013년 발표한 '행복한 사전'으로 이듬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며 일본 영화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어 발표한 '이별까지 7일'은 만으로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임에도 가족과 사회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 놀랍다. 그는 "청춘은 나이와 관계없이 본인의 의지대로 끝낼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춘에 대한 유연한 태도처럼 영화에 대해서도 여전히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영화와 우연찮게 인연이 닿았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과거는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또 이야기가 됩니다. 앞으로 15~20년이 지나 중년의 아저씨가 됐을 때, 비로소 제 인생을 정리하게 될 그때에야 왜 감독이 됐는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