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지독할 정도로 파고드는 이야기꾼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감각적인 문체로 여러 편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다. 충무로가 오래 전부터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탐내온 이유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첫 번째 영화다. 2009년 발간된 동명의 원작은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정유정 작가의 이름을 문학계에 널리 알렸다.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칩니다." 소설과 영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은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담아낸 말이다. 정유정 작가의 청춘이 반영된 말이기도 하다.
"20대를 가장처럼 보냈어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어머니가 3년 반 정도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거든요. 큰딸로서 세 동생의 엄마 노릇까지 해야 했죠.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절망도 느꼈지만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때 누군가 어깨를 토닥여준다면 더 버틸 힘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디선가 분투하고 있을 청춘의 등을 두들겨주자는 심정으로 소설을 썼어요."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늘 극단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 심장을 쏴라'는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정신병원에 모인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정유정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청춘과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의지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욕망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온몸을 내던져서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 심장을 쏴라'는 자유의지대로 인생을 끌고 가지 못하는 수명이 자유의지의 표상과 같은 승민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죠. 넓은 폭으로 본다면 삶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청춘에 대한 분투기가 있어요."
자신의 소설이 처음 영화화된 만큼 '내 심장을 쏴라'에 대한 정유정 작가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다. 정유정 작가는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지보다는 감독의 새로운 해석과 변주가 더 궁금했다"며 "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원작을 절제와 균형으로 담아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가장 울컥했던 순간은 안나푸르나를 종주하던 수명이 '별들의 바다'를 보는 장면이었다.
"'28'을 낸 다음 완전히 방전이 됐어요. 다음 소설을 쓸 소재도 있지만 쓰고 싶은 욕망이 안 생겼죠. 그래서 '내 심장을 쏴라' 작업노트를 보다 수명이 간 안나푸르나를 직접 가기로 했어요. 그때 진짜로 '별들의 바다'를 봤죠. 영화에서도 그런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별들의 바다가 담겨 있어 무척 감격스러웠어요."
정유정 작가가 쓴 소설의 영화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표작인 '7년의 밤'은 현재 추창민 감독이 시나리오를 맡아 막바지 작업 중이고 최근작인 '28'도 최근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마쳤다. 정유정 작가는 "영화화 판권을 계약할 때 중요한 건 단 두 가지, 제목과 주제를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내 소설이 다른 감독의 손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날지가 기대된다"고 털어놨다.
'28' 이후 히말라야로 떠나 에너지를 충전하고 온 정유정 작가는 또 다시 창작의 시간으로 뛰어든다. 다음 작품은 초고까지 나온 상태로 조만간 남해에 내려가 다시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작품 또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을 파고드는 작품이라고 귀띔한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하게 잘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런 인물도 제 취향이 아니고요. 오히려 무의식 속에 지옥과 욕망이 있는 인물이 더 매력적이에요. 그런 인물일수록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고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비로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고 봐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인간의 본성, 그 중에서도 소위 '순수악'이라고 말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이 생깁니다."
사진/라운드테이블(이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