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힘들고 고달플 때,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며 추억에 빠져든다. 세월 속에 무심히 사라져버린 그 시절의 순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뒤늦은 회한에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인생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앞을 향해서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쎄시봉'(감독 김현석)을 보면서 느낀 것 또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가득한 인생의 한 모습이었다.
'쎄시봉'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포크 음악 열풍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다. 서울 무교동에 위치했던 음악 감상실이자 '젊음의 성지'로 불린 쎄시봉에서 활동한 가수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윤형주, 송창식이 트윈폴리오로 활동하기 전 트리오였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가상 인물인 오근태와 민자영이다.
"우리도 스무 살이었던 적이 있었다."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이장희(장현성)의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과거의 시간여행을 관객을 초대한다. 초반부는 윤형주(강하늘), 송창식(조복래)의 라이벌 경쟁, 그리고 이장희(진구)가 새롭게 찾아낸 오근태(정우)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포크 음악 열풍을 고스란히 재현해낸 영화는 그 시절 청춘들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민자영(한효주)의 등장부터다. 음악영화로 시작한 영화는 자연스럽게 멜로로 분위기를 바꾼다. 윤형주, 송창식의 '대시'도 거절한 도도한 매력의 민자영과 그런 민자영에게 순정 어린 사랑을 고백하는 오근태의 이야기는 이장희의 노래 '나 그대에게 드리리'로 시작해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이크'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시대와 음악으로 포장돼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순수했지만 서툰 첫사랑의 기억이다. 현실적인 조건 앞에서 흔들리는 민자영과 그런 민자영에게 "평생 널 위해 노래할게"라며 수줍게 말하는 오근태는 첫사랑을 다룬 멜로영화 속 익숙한 모습이다. 이는 김현석 감독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화는 첫사랑의 기억을 아련하게 담아 관객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한다. 그 시절의 포크 음악은 아련함과 그리움의 증폭제다.
다만 과거의 순수와 회한을 굳이 다시 끄집어내 보여주는 후반부는 다소 사족 같다. 40대가 된 오근태와 민자영을 연기하는 김윤석과 김희애의 열연도 후반부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부족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는 마지막 한 마디가 조금은 낯간지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15세 이상 관람가. 2월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