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UPI 코리아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것은 대중의 욕망을 여과 없이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 속에서 극대화된 욕망이 사람들에게 은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소설에 이어 영화로 완성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숱한 논란 속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이야기는 익숙한 신데렐라 스토리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좋아하는 수수한 처녀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와 27세 젊은 나이에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CEO 크리스찬 그레이(제이미 도넌)의 로맨스가 중심에 있다. 독감에 걸린 룸메이트를 대신해 그레이의 인터뷰를 하게 된 아나스타샤는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가득한 그레이의 매력에 단번에 사로잡힌다. 로맨스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명적인 첫 만남이다.
문제는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그레이는 아나스타샤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직접 헬기를 조종하며 아름다운 야경을 선물하며, '테스'의 초판본과 노트북, 자동차 등을 선물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아나스타샤가 마음을 여는 순간 그레이는 오히려 강하게 경고한다. "나는 사랑을 나누지 않아. 거칠게 섹스를 하지." 순조롭게 흘러가던 두 남녀의 로맨스는 이제 욕망의 경계에 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된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UPI 코리아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원작 소설이 출간됐을 때 많은 이들은 '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은밀하고 자극적인 섹스 장면의 묘사 때문에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별칭까지 생겨났다. 그것은 그레이의 남다른 성적 취향에서 기인한다. 완벽에 가까운 남자가 사실은 SM 플레이를 즐기는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바라는 아나스타샤와 가학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그레이의 갈등은 일탈을 꿈꾸는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영화 속 섹스 신의 표현 수위는 상당하다. 그러나 영화는 두 남녀의 감정 변화 또한 디테일하게 담아냄으로써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만 시종일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그레이의 캐릭터는 속편을 위한 설정임에도 다소 답답하게 다가온다. 지배와 복종으로 이뤄지는 SM 플레이가 소재라는 점도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추구하는 것은 결국 로맨스 장르가 지닌 욕망의 극대화다. 에로티시즘으로 포장돼 있지만 그 속에는 결국 욕망을 자극하는 판타지가 숨어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2월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