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건 전체적인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느냐 입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것,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캐릭터나 역할의 직업, 장르가 될 수도 있어요. 관객에게 신선함을 주고 싶으니까요."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신하균(40)은 새로움을 향한 여정으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여왔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런닝맨' 등 대중적인 작품은 물론 '지구를 지켜라' '복수는 나의 것' '카페 느와르' '박쥐' 등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들도 두루 섭렵하며 충무로의 독보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5일 개봉하는 '순수의 시대'는 신하균의 또 다른 도전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데뷔 이후 첫 사극이기 때문이다. 조선 개국 7년, 이방원이 일으켰던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욕망과 순수를 꿈꿨던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서 신하균은 순수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내거는 장군 김민재를 연기했다.
"처음 해보는 사극이라서 다른 이미지로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 많았어요. 무술도 해야 하고 말도 타야 하잖아요. 무엇보다도 지금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어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건 남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니까요."
신하균의 도전은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살육과 폭력으로 가득한 전장에서 적들과 싸우던 김민재가 홀연히 짓는 허무한 표정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하균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신경질적인 근육'이라는 홍보 문구로 소개되고 있는 근육질 몸매 또한 그의 팬이라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신하균이 김민재에게 끌린 것은 단지 외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김민재가 내면에 갖고 있는 깊은 결핍에 배우로서 매력을 느꼈다.
"김민재는 완벽한 장수가 아니에요. 본인이 원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도 아니고요. 어릴 때의 트라우마도 있는, 외롭고 답답하게 사는 사람이라 안쓰럽고 불쌍했어요. 그런 김민재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그걸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매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신하균이지만 그 캐릭터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결핍'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신하균은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유에 대해 "완벽한 사람에게서는 매력을 잘 못 느낀다"고 말했다. "작품 선택할 때마다 꼭 어떤 결핍이 있는 인물을 고르려고 하지는 않아요. 다만 완벽한 영웅보다는 부족하고 안쓰러운 점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큰 매력을 느낄 뿐이에요. 저 역시도 그들처럼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늘 완벽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신하균이기에 이런 말은 의외처럼 들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인간 신하균은 완벽주의와 거리가 멀다.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고 장난감과 레고, 피규어 등을 만드는 것도 모으는 것도 좋아한다는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 있다. 소문난 막걸리 애호가이기도 한 그가 "한때는 재즈에 빠져서 막걸리를 마시며 재즈를 듣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는 모습에는 완벽주의자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여유와 편안함이 있었다.
첫 사극을 경험한 신하균은 "영화적으로 풀어낼 게 많은 매력적인 장르"라며 "다른 시대와 신분을 연기할 수 있다면 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늘 신선함을 찾아왔지만 배우로서는 현재에 집중하며 배우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다.
"인간 신하균이 어떤 사람이냐고요? 그건 작품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배우로서 목표가 있다면 관객과 같이 나이가 들면서 미래가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배우는 1년이 지나고 5년,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할까?'라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배우처럼요."
사진/라운드테이블(김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