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돈은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종이 한 장이 무시무시한 가치를 지닌다. 종잇조각에 부여된 이 가치가 우리의 삶을 때로는 풍족하게 만들고 때로는 피폐하게 만든다. 돈이 지닌 탐욕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탐욕을 추구하는 삶의 결과는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돈이 지닌 달콤함을 부인할 수 있을까. 영화 '종이 달'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는 가쿠다 미쓰요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붕괴한 90년대 중반 일본을 배경으로 어느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리카(미야자와 리에)는 아이는 없지만 남편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자다.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은행에서 계약직이 된 그녀는 부유한 노년층 고객들을 상대하며 나름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 다만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삶이 조금 지루할 뿐이다.
사건은 리카의 우연찮은 행동에서 비롯된다.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쇼핑하던 리카는 부족한 돈을 고객의 돈으로 대신해 계산하는 우발적인 행동을 범한다. 남의 돈이지만 빌려서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저지른 그 행동은 그러나 단조롭고 평온했던 삶에 작은 균열을 낸다. 점점 깊어지는 그 균열이 리카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든다.
'종이 달'은 리카를 통해 언뜻 돈의 탐욕의 무서움을 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범했던 주부가 돈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돈은 받을 때보다 줄 때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사기는 어느 새 억대의 횡령 사건이 된다. 그렇게 파국으로 향하는 리카가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돈의 탐욕에 빠져 눈이 먼 것처럼 보였던 리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이다. 그때 관객은 커다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사실은 리카와 같은 욕망이 있지 않냐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 질문에 선뜻 아니라고 답할 수 없는 현실이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미야자와 리에는 이 영화로 도쿄국제영화제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무덤덤한 표정이지만 그 속에 복잡한 내면을 담은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다. '퍼머넌트 노바라'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일본 영화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7월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