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이홍원 기자] 자살 시도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들이 국민참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자살 시도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지난 15일 열렸다. 이 재판에서는 A군의 폭행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이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가구 시공업체에 취직한 A(19)군은 실질적 '소년가장'이었다. 무직이던 아버지(53)는 매일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몇 번 기도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일 오후 아버지는 또 다시 장롱 꼭대기에 건 줄에 목매 자살을 시도했다. 이를 본 A씨는 아버지를 살리려고 매달려 있는 아버지의 엉덩이를 붙잡고 바닥에 던졌다. 하지만 "죽게 놔둬라"는 아버지의 말에 A군은 3∼4분간 10여 차례 아버지를 때렸다.
20여분 후 아버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은 A군은 119에 신고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숨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긴급 체포된 A군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진술했고,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재판에서 검찰은 A군의 진술과 검안 보고서, 사망진단서 등을 근거로 "A군의 폭행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군의 국선변호인은 "A군이 목맨 아버지의 엉덩이를 붙잡고 바닥에 던졌을 때의 충격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반박했다. 이어 "10대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직후 충격에 빠진 상태로 말한 자포자기성 진술"이라며 "무리한 수사에 무리한 기소"라고 주장했다.
또 변호인은 "검찰은 시신을 겉으로만 보는 검안 보고서와 사망진단서, 진술만을 바탕으로 기소했다"며 "가장 중요한 부검 감정서는 기소된 지 한 달만인 4월 29일에 제출됐다"고 덧붙였다.
배심원단은 무려 4시간 가까이 고심한 후, 9명 중 2명만이 검찰이 적용한 존속상해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나머지 7명 중 1명은 존속상해 혐의만 있다고 판단했고, 6명은 가장 처벌 수위가 약한 존속폭행 혐의만 있다고 봤다. 배심원단은 A군에 대한 양형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조의연 부장판사)도 "A군의 폭행과 아버지의 사망 원인인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며 배심원 같은 판단을 했다. 배심원과 재판부는 검찰이 적용한 '존속상해치사' 혐의가 적용돼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로 검찰이 시신 부검 감정서가 나오기도 전 받은 아들의 진술과 시신 외관만을 보는 검안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기소한 것이 드러나 부실 수사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