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어른이지만 아이이고 싶은 사람들. 키덜트(kidult, 'kid'와 'adult'의 합성어)는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사회적인 트렌드다. 어릴 적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장난감이나 게임을 어른이 된 뒤 다시 하게 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를 통해 그때의 추억과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마음은 그 하나의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각박한 현실을 잊기 위함이다. 어른이 되면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던 믿음이 깨진 순간, 과거는 추억과 향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고전 아케이드 게임 캐릭터를 소재로 한 영화 '픽셀'의 지향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홀로 집에' '미세스 다웃파이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 가족 관객을 위한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신작인 만큼 영화는 남녀노소 모두 다 즐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1980년대의 정서를 자극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영화가 이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30~40대 관객을 겨냥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영화는 루저들의 이야기다. 소년 시절 아케이드 게임 세계 챔피언에 도전할 정도로 미래가 기대됐던 샘(아담 샌들러)은 어른이 된 지금 홈시어터를 설치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샘과의 대결에서 아케이드 게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던 에디(피터 딘클리지)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고, 소년 시절부터 엉뚱했던 러드로우(조쉬 게드)는 어른이 된 지금도 음모론을 믿으며 철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샘의 친구인 미국 대통령 윌(케빈 제임스)도 연일 하락하는 지지율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궁창 같던 이들의 삶은 그러나 외계인의 침공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나사(NASA)가 외계로 보낸 아케이드 게임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외계인은 팩맨, 갤러그, 동키콩, 지네, 스페이스 인베이더 등 아케이드 게임 캐릭터로 나타나 지구 침공을 시작한 것이다. 외계인과 맞서기 위해 잊혀진 아케이드 게임 천재들이 다시금 소환된다. 그렇게 루저는 지구를 지킬 영웅이 된다.
'픽셀'은 '너드(nerd, 괴짜라는 뜻. 영화에서는 '덕후'로 번역됐다)'와 '키덜트'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과거를 잊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어떻게 보면 퇴행적인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각각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코믹한 호흡이 캐릭터들에 호감을 불어넣는다. 마돈나, 홀 앤 오츠, 그리고 '스타워즈' 등 80년대 문화 아이콘도 끊임없이 언급된다.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으로 재탄생한 아케이드 게임 캐릭터들의 모습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고전 아케이드 게임 캐릭터를 소재로 삼은 기발한 설정을 전형적인 흐름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아쉽기도 하다.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너드 캐릭터들이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한 드라마 라인이다. 탄탄한 드라마보다는 CG를 이용한 볼거리에 치중한 것도 눈에 밟힌다. 하지만 그 시절 오락실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픽셀'은 특별하게 다가갈 것이다. 100원 짜리로 오락실에서 보냈던 시간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위대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