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윤정원기자] 정부가 엘리엇 사태로 포이즌필·차등의결권 제도를 추진한다는 보도를 부인한 지 하루 만에 여당 내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도 국회부의장이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개발언 형식으로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무능력한 재벌 총수가 소수 지분만으로 기업을 계속 장악하도록 보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을 계기로 우리 기업이 투기성 외국자본에 취약하다는 점이 노출됐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등 경제선진국 수준의 경영권 방어장치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은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한 상태지만 우리나라는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여론에 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기존 주주에게 저가로 주식을 발행·인수하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또 차등의결권은 기업 지배주주에게 보통주보다 높은 수준의 의결권을 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다. 한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제도다. 재벌이라는 특수한 재계 현실로 인해 비판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 부의장실 관계자는 "2009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다 무산됐고, 2010년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지만 결국 폐기됐다"면서도 "삼성 합병 건이 터져서 (다시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4월 한국상장협회와 제도 도입과 관련해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어 그때 나온 이야기를 가지고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국회 법제실에 검토를 의뢰해 내일 검토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다. 내일 법안이 오면 이번 달 안에 발의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날 정부에서 이 제도들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접촉한 적 없다"고 했다.
메트로신문 취재 결과 정 부의장 법안에는 기존 제도와는 다른 내용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차등의결권의 경우 정 부의장은 주식 발행 단계에서 차등의결권주를 따로 마련한다. 정관을 통해서다. 기존 주식에 의결권을 다르게 부여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다.
한 전문가는 이 같은 방식의 차등의결권주와 포이즌필 제도를 함께 도입할 경우 모든 회사가 정관에서 정하기만 하면 무능력한 총수의 기업 장악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회사의 정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창업주에만 차등의결권을 주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의결권이 1주에 불과한 주식의 주가는 폭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 부의장은 1970년부터 30여년간 울산에서 목재 관련 중소기업을 설립해 운영해온 오너 기업인 출신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기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에 이번 상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것 아니겠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정부 차원에서도 경영권 방어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돌지만 현재 정부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