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윤정원기자] 재벌그룹들이 자사주를 이용하여 우호세력을 확보하고 이를 경영권 세습에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이 3일 발의됐다. 합병 성사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KCC에 매각한 삼성물산의 행태를 계기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준비해 온 법안이다. 롯데가의 집안싸움으로 재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기회로 삼았다.
정반대로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제2의 엘리엇의 도전을 불허하겠다며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경영권 방어 차원을 넘어 재벌 총수가 누려 온 기업 지배력을 영구히 보장해준다는 비판을 받는 개정안이다.
돌발적인 롯데가 사태가 어쩌면 삼성가 등 한국 재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 합병 때 삼성은 중립을 지켜야할 이사진이 삼성 편에서 우호주 확보에 나섰고,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매각하기도 했다. 엘리엇의 경영권 참여 요구를 지배권 약탈 시도로 보는 이들은 그 이상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한국 재벌에게 마련해 주자고 했다. 엘리엇이 주주총회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측에서는 편법마저 마다하지 않은 한국 재벌에 수술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박 의원은 개정안 발의 설명자료에서 "자사주를 처분할 상대방이 불공정할 경우 그 회사의 지배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주식을 처분할 상대의 공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재벌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박 의원은 "각 주주가 가진 주식에 따라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하도록 규정하되,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제3자에게 자사주를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개정안을 설명했다. 이럴 경우 삼성물산과 같은 자사주 매각은 불가능해진다.
이와 반대로 새누리당 소속 정갑윤 국회 부의장이 곧 발의할 법안은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기존 주주에게 저가로 주식을 발행·인수하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과 기업 지배주주에게 보통주보다 높은 수준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을 담고 있다.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등에 업은 개정안이지만 이번 롯데가 사태로 우호 여론이 이어질지는 매우 불투명해졌다.
이미 새정치연합은 당청의 강력한 노동개혁 드라이브에 맞서 의제를 재벌개혁 등으로 확대시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롯데가 사태를 계기로 지도부 내에서 "총수 일가가 소수의 지분을 갖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재벌개혁을 벼르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한국 재벌에 대한 성토가 나오고 있다. 특히 친박근혜 의원들의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롯데가 사태를 두고 "국민에 대한 역겨운 배신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정부도 롯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벌 싸움이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롯데가 문제를 비롯해 재벌개혁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