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KAFA Films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사람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성공과 행복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런 성실함과 열정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자본이 지닌 탐욕을 체화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이룰 수 없는 세상, 그것이 한국 사회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오직 성실하게 살아온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 '잉투기'의 엄태화 감독 등 주목할 신인 감독들을 배출해온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장편제작연구과정 작품이다. 단편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더블 클러치' 등을 연출한 안국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의 주인공 수남(이정현)은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이다. 16세 때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 공장 취직이 아닌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한 수남은 학교를 다니며 자격증을 14개나 따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수남은 자신이 취득한 자격증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그리고 술을 배우고 남자를 만나게 된다.
수남의 바람은 소박하다.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난 남자 규정(이해영)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 수남은 아이를 낳기를 바란다. 그러나 규정은 아이보다 집이 먼저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난한 노동자 부부에게 집은 멀고 먼 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규정은 공장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 그때부터 수남은 남편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하기 시작한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KAFA Films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루는 소재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꾸준히 일한 만큼 꾸준히 오르는" 집값 문제, 그리고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들의 갈등 등이다. 그러나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빌려온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판타지의 색깔로 녹여낸다. 색다른 시도를 그럴싸하게 담아낸 기발한 연출력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중심에는 수남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다. 앨리스가 토끼에 이끌려 이상한 나라를 모험하듯, 수남 또한 무언가에 홀린 듯 한국 사회를 떠돈다. 영화는 가난한 노동자 여성이지만 동시에 순수함 그 자체인 수남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직 탐욕만을 쫓으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상이 곧 한국 사회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품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을 맞이할 때만 존엄과 품위를 갖출 수 있을 뿐이다.
코믹 잔혹극을 표방한 만큼 영화는 다소 잔혹한 장면을 담고 있다. 그 잔혹함 속에 쓴웃음이 짙게 배어있다.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추천 받아 영화에 출연했다. 그래선지 영화 곳곳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같은 느낌도 풍겨난다. 쉽지 않은 수남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낸 이정현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여름 대작들 사이에서 놓쳐서는 안될 빛나는 발견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8월 1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