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민락동 양로원 '나눔의 샘'에서 정기공연을 하고 있는 개그맨 김 민씨와 강길성, 김호평 씨.
사회를 보는 개그맨 김 민 씨./나눔의 샘 제공.
'나눔의 샘'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나눔의 샘' 단원들.
[메트로신문 최치선 기자] 개그맨 김민 씨(59). 1980년 6월 김형곤, 장두석, 조정현, 이성미와 함께 TBC 공채 개그맨 2기로 출발했다. 그는 현재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왼쪽의 시력도 거의 실명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이 갖지 못한 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랑의 눈이다. 이 사랑의 눈으로 그는 지금까지 14년 동안 의정부 나눔의 샘과 종로구 청운양로원에서 자신의 개그를 통해 사랑을 전하고 있다.
그가 하는 개그는 조금은 철 지난 개그지만 사람들은 웃는다. 수없이 들었던 레퍼토리도, 반복되는 농담도 그가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웃는다.
지난 11일 의정부시 민락동 나눔의 샘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불편한 눈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개그로 강당에 가득 모인 노인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직 대통령 성대모사나 특유의 만담에 울고 웃는 노인들을 보면서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고 했다.
재능기부를 시작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전세금을 사기당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당뇨까지 왔는데 거기에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으니까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어요. 그렇게 실의에 빠져서 지내고 있는데 어느날 낙원동에 있는 파고다 공원에 갔다가 할아버지 몇 분이 모여 있기에 즉석에서 개그를 했지요. 큰 기대없이 본능적으로 한 것인데 너무나 즐거워하셔서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양로원과 복지원 등에 계신 어르신을 위해 개그를 다시 시작 했어요" 라고 답한다.
다행히 혼자가 아닌 든든한 두 동생이 함께 하기에 그의 공연은 힘이 난다. 매달 둘째주 금요일에는 어김없이 청운양로원과 나눔의 샘을 번갈아가며 위문공연에 나선다. 그 때마다 두 '동생'들도 함께하곤 한다. 할머니들은 이들을 "세 아들"이라고 부른다. 둘째 아들 강길성 씨와 막내아들 김호평 씨다. 이들은 양로원을 찾을 때면 사탕, 과일, 빵 등을 사 갖고 간다.
그는 "한 달에 10만원을 투자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데 그걸 못 쓰겠느냐"고 말한다. 그의 처지를 아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숙연해진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 남들을 돕는 것을 의무라고 말했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는 그 날까지 그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 프로 진행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주일, 김동길, 정주영, 김종필, 이승만, 노무현, 김대중, 노태우, 전두환, 김영삼,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과 주요 명사들의 성대묘사에 능하다. 한 사람으로 한 시간 이상 한다는 그가 직접 자신의 재능을 보여줬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개그맨 이주일 씨의 성대묘사를 차례로 하는데 눈을 감고 들으니 정말 똑 같았다.
나눔의 샘의 할머니들에게 김 씨는 정말 친아들 이상이다. 자식들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운 할머니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얼굴을 부비는 김 씨는 친자식 이상으로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의 살가움 뒤에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모른다. 실명을 앞 둔 그는 "두렵다"고 했다. 빛도 안 보이는 캄캄한 어둠에 갇히는 꿈에 몸서리치며 잠에서 깨는 일도 잦아졌다. 그럴수록 그는 마음을 다잡고 있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그는 지금 하고 있는 봉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며 후원하고 있는 고영준(가수)씨 역시 강길성, 김호평(유일호평)씨와 함께 그를 아끼고 사랑한다. 고영준씨는 "늘 변함없이 진심을 다해 어르신을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아요. 비록 많은 도움은 못돼지만 함께 하고 있는 것이 기쁩니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비록 눈이 안보여서 예전만큼 봉사를 할 수 없지만 이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고 자신과 함께해주는 동생들 덕에 용기가 난다"고 덧붙였다.
유일호평 씨는 김민 씨를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늘 행복한 사람이다"며 "항상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는 천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 씨는 "남북한 홀로되신 노인들을 한 자리에 모셔놓고 공연을 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며 죽기 전에 그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