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또 다시 인간을 이겼다. 고도의 계산 능력은 물론 직관력과 통찰력까지 갖춘 인공지능의 등장에 많은 이들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 기술의 신기원을 보여준 동시에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중요한 고민거리를 우리에게 남겨줬다.
이세돌 9단은 1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리지 매치' 5번기 제3국에서 알파고에 176수 만에 불계패했다. 5판 3승제로 진행되는 이번 대결에서 알파고가 3연승을 거둠으로써 남은 4국과 5국의 결과와 관계없이 알파고가 우승을 확정하며 상금 100만 달러를 차지하게 됐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IBM이 만든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캠페인 게리 카스파로르를 꺾었고, 2011년에는 IBM의 또다른 인공지능 왓슨이 귀즈왕 켄 제닝스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바둑은 돌을 놓는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보다 많은 복잡성 때문에 인공지능이 쉽게 인간을 이기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알파고는 세계 최정상의 프로기사와의 대결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며 인공지능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이번 대국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알파고가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바둑을 뒀다는 점이다. 실수로 보였던 수들이 고도의 계산을 통해 놓은 수라는 것이 세 차례의 대국에서 여러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알파고가 인간 최고수보다 훨씬 깊은 수읽기와 집계산 능력을 보여줬다는 뜻이다.
바둑계와 IT 업계 전문가들은 알파고가 바둑의 새로운 정석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프로 6단이기도 한 김찬우 AI바둑 대표는 "알파고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딥러닝을 통해 바둑의 원리를 깨우쳐서 그 원리대로 두고 있는 것"이라며 "알파고는 그동안 틀에 묶여 있던 것, 고정관념이 있던 것을 벗어난 바둑을 뒀다"고 말했다.
프로 기사 이다혜 4단은 "우리가 갖고 있던 바둑에 대한 개념이 있었는데 알파고는 이를 파괴하고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특정 형국에서 정수라고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수를 알파고가 제안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세기의 대결'은 직관력과 통찰력이 더 이상 인간만의 능력이 아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도의 계산 능력 외에도 직관과 통찰이 필요한 바둑에서 알파고가 거침없는 3연승을 거뒀다는 점에서 알파고는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이 됐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밀어내는 공상과학(SF)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바둑을 졌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인공지능의 무한한 발달 가능성을 증명한 계기인 만큼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어두운 미래가 오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도연 포스텍(포항공대) 총장은 "바둑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진 것 자체가 큰 이슈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면서도 "물론 인공지능에 대체돼 없어지는 직업이 많겠지만 그게 반드시 불행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도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언어 통·번역이나 분석적인 일은 할 수 있겠지만 인간처럼 예술 활동을 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며 "바둑도 일종의 계산이고, 감정과 상상력으로 하는 예술 활동은 인공지능이라도 어렵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철학자인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은 "인간이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가치 지향적 활동이 피폐해지고 결국 인간 존엄성을 잃게 될 것"이라며 "무엇을 위해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어떻게 쓸지를 끝없이 자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